꿈을 꿨어요. 봄날이었어요. 사방에 벚꽃이 얼마나 많이 피었던지, 갑자기 아버지가 그러는 거예요. 오늘은
2026. 4. 23.
은미씨의 한강편지 347 💌 흰목물떼새가 된 여자
꿈을 꿨어요. 봄날이었어요. 사방에 벚꽃이 얼마나 많이 피었던지, 갑자기 아버지가 그러는 거예요. 오늘은
은미씨의 한강편지 347 💌 흰목물떼새가 된 여자
ⓒ최종인
# 정희
꿈을 꿨어요. 봄날이었어요. 사방에 벚꽃이 얼마나 많이 피었던지, 갑자기 아버지가 그러는 거예요. 오늘은 우리 밭에 나가지 말고, 다같이 소풍을 갑시다.
일하러 나갈 채비를 하던 엄마는 어리둥절했지요. 하지만 언니들은 신났어요. 그래요 엄마, 우리 소풍가요. 아버지가 소풍 가재.
꿈 속에서 우리는 모두 강가에 나가 놀았어요. 어디서 났는지 엄마는 김밥이며 삶은 계란, 닭튀김과 사이다까지 고루 펼쳐 놓았죠.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어요. 우리는 다같이 물고기를 잡으러 가기로 했죠. 아버지가 어디선지 작은 그물 같은 걸 들고 왔어요. 정순아 정미야 정희야, 아버지를 따라와라. 아버지는 다정한 목소리로 우리 이름을 일일이 불렀죠.
강 가운데 작은 섬이 있었어요. 물이 깊지 않아서 아버지는 성큼성큼 앞서 걸었어요. 언니들은 김밥과 닭튀김을 먹겠다며 강가에 남았죠. 정희만 아버지를 따라갔죠. 강 가운데 모래톱은 와보니 학교 운동장처럼 컸어요. 아니, 처음에는 작았는데 갑자기 모래들이 강물에 쓸려 오며 눈앞에서 점점 더 커지는 거예요. 아버지는 모래톱을 건너 강 기슭으로 걸어갔어요. 하지만 정희는 모래톱에 앉았다가 아예 누웠죠.
햇살이 감실감실 눈가에 어려 정희는 나른했죠. 그렇게 한참 누워 있으니 작은 기척이 들려요. 어떤 새가 다가와서 정희의 얼굴을 바라봐요. 너는 여기서 뭐하는 거야? 하고 묻는 듯이 약간 갸우뚱 하는 표정으로. 정희는 누운 채로 복화술을 하듯이 새에게 말을 해요. 너는 누구야? 여기가 너네 집이야? 새는 대답해요. 나는 흰목물떼새야. 네가 누운 그 옆에 내 알들이 세 개 있어. 좀 비켜줄래? 이제 내가 품어야 할 시간이거든.
미안해 미안해. 내가 몰랐어. 정희는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잘 안 되었죠. 아버지, 엄마. 나 좀 일으켜 줘. 여기 밑에 새알이 있대. 꿈속에서 정희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어요. 몸을 일으키는 것도 쉽지 않았죠. 나 좀 도와줘요. 엄마 엄마! 다급하게 엄마를 부르다가 정희는 잠이 깨었죠.
# 흰목물떼새에게
지난 주에 미호강에 갔어요. 연태희 반장님의 안내로 우리가 생태공원을 만들고 있는 현장을 구석구석 살펴봤어요. 허리가 굵어지고 초록이 깊어진 버드나무들 사이를 지나 습지를 지나 갈대 뿌리들이 흙을 붙잡은 평지를 걷다 보니 이내 모래밭이 펼쳐졌어요. 강 쪽으로 모래밭은 아주 넓었죠.
4월 19일, 진천의 모래밭에서 수달어린이교실이 열렸다.
우리가 만드는 거예요. 꽤 넓게 드러난 모래밭을 보며 연반장님과 염대표님은 자랑스러워했죠. 어디를 더 파고, 뭘 더 심고, 경사를 어떻게 만들고 하면서 한참 떠드는 사이, 저는 강물 위로 포롱포롱 날아다니던 할미새에 시선을 빼앗겼어요. 저기 좀 봐요. 예쁘다! 이렇게 외치면서 말이죠.
낮고 경쾌하게 강물 위를 나는 할미새를 눈으로 쫓다가 이내 다른 새를 발견했어요. 날씬하고 긴 다리에 작은 몸집을 가진 새가 강물 위로 솟은 모래톱에서 종종걸음으로 총총 걷고 있었죠. 저기 좀 봐요. 저 새가 물떼새인가요? 흰목? 아니면 꼬마물떼새인가? 오래 전 4대강 파괴 현장을 걸으며 흰목물떼새와 꼬마물떼새 이야기를 들었던 저는 아는 체를 했죠. 가볍게 총총 걷다가 옆으로 날아간 그 새는 흰목물떼새였어요. 멸종위기종이죠.
모래톱 위 멸종위기 야생동물 Ⅱ급의 흰목물떼새. ⓒ이효미
# 다시, 정희
정희는 알죠. 강에서 먹고 쉬고 잠을 자고 새끼를 낳아 키우는 수많은 생명들의 기척을 알죠. 정희는 그 강을 사랑하죠. 애틋하고 작은 생명들을 엄마처럼 다독다독 보듬어주니까요.
정희가 사랑하는 강에도 흰목물떼새가 살아요. 이렇게 봄철이 되면 흰목물떼새도 사랑을 하고 모래톱에 작고 보드라운 알을 서너 개 낳죠. 새도 새의 알도 모래 색깔과 닮아서 자세히 봐야 보이죠.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흰목물떼새도 새의 알도 작고 여리죠. 그렇게 작고 여린 어미도 모래톱 위에 알을 낳고 강물 소리를 들으며 오래 알을 품죠. 작고 여린 어미는 알을 깨고 나오는 더 작고 여린 새끼들을 키우죠.
하얗고 작은 새를 발견한 당신! 눈썰미가 좋네요. 👍
며칠 전에 정희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죠. 정희가 사랑하는 강을 준설하고 강바닥을 파서 모래톱을 없애는 계획을 알게 되었죠. 구청의 하천관리부서는 공사를 하겠다며 강경했어요. 정희는 다급하게 최종인 선생님에게 전화했죠. 선생님. 흰목물떼새 좀 찾아봐주세요. 급해요. 곧 준설 들어간대요.
당장 시간이 어려운데… 그렇게 답하던 최선생님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나타났어요. 어서 가봅시다. 커다란 카메라를 든 그가 앞서서 성큼성큼 걸었죠.
강가 모래와 돌이 있는 곳에는 수달의 발자국과 똥이 많았죠. 여기 수달의 핵심 서식지인데 무슨 준설이냐고, 당장 문화재청에도 언론에도 연락을 해야 한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죠. 강 중간에 쌓인 모래톱에는 흰뺨검둥오리들이 쌍쌍이 데이트라도 하는지 다정하게 쉬고 있었죠. 저들도 곧 알을 낳겠구나 싶더군요. 그 날 흰목물떼새는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강을 살피고 기록하는 사람들은 매해마다 이 새를 만나죠. 얼마 남지 않은 작은 모래톱에서 알을 낳고 키우는 이 작고 여린 존재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랑하죠.
강바닥을 파고 모래를 퍼가면 흰목물떼새 어미와 아가들이 살아가는 집이 사라지죠. 이제 새들의 사랑이 무르익어 알을 낳을 참인데, 느닷없이 포크레인이 들어와 이 작은 강마을을 파괴하려고 하네요.
이 곳이 우리집입니다. 우리가 새끼들을 키우며 살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흰목물떼새에게 물어본다면 그렇게 대답할 거예요. 하염없이 모래톱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던 정희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몰라요. 차라리 나도 흰목물떼새가 되고 싶어. 그래서 여기요, 우리가 아직 살고 있거든요, 하고 말하고 싶어.
포크레인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아요. 그들은 공사를 벌이며 돈을 쓰는 것을 좋아하죠. 어서 공사를 벌이고 싶어하는 그들의 성급한 마음에는 모래를 집 삼아 살아가는 흰목물떼새가 눈에 들어오지 않죠. 흰목물떼새만이 아니죠. 수많은 새들과 저서생물들이 모래톱에 기대어 살아가죠.
정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이미 그의 사랑은 깊고, 이미 그는 강이 되었고, 흰목물떼새가 되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