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중랑천을 여러 번 오갔습니다. 서린컴퍼니라는 기업에서 자원봉사를 나왔는데, 그들이 활동하는 생추어
2026. 4. 30.
은미씨의 한강편지 348 💌 모감주나무와 나
어제는 중랑천을 여러 번 오갔습니다. 서린컴퍼니라는 기업에서 자원봉사를 나왔는데, 그들이 활동하는 생추어
은미씨의 한강편지 348 💌 모감주나무와 나
어제는 중랑천을 여러 번 오갔습니다.
서린컴퍼니라는 기업에서 자원봉사를 나왔는데, 그들이 활동하는 생추어리 9구역은 멀리 떨어져 있어요.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촉박하다 보니 걸음이 빨라졌죠. 그 와중에 우중가 로맨 님이 갑자기 배가 아파 드러눕기도 해서 또 한 번 화급하게 왔다갔다 했어요. (다행히 좋아졌어요.) 그렇게 겨를이 없던 와중에도 정희는 곁에서 걷다가 저에게 말했어요. 봐요. 아카시 꽃이 피었어요. 언제 거기 아카시 나무들이 있었나 싶은데 크고 작은 네 그루의 나무가 저마다 꽃을 피우고 서있더군요. 향기로운 꽃들 사이로 벌들이 잉잉대며 날아들겠지요.
“도촌천에 지역난방공사 직원과 함께 심은 모감주나무 싹이 튼 모습입니다.
제가 중간에 두차례 물을 공급해줬습니다.”
ⓒ박평수
아침에는 박평수 이사님이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한달여 전에 고양 도촌천에 나무를 심었는데 이제 싹이 텄다고 하네요. 묘목을 구할 때 제법 크고 튼튼한 걸 구하고 싶었는데 시장에서 구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가늘고 작은 묘목을 심을 수밖에 없었는데 걱정이 많았죠. 뿌리를 잘 내리고 살아내기를 바라며 정성껏 심었어요. 나무심기 활동을 이끌었던 박이사님은 행여 나무가 마를 세라 물을 주러 오간 모양이군요. 그는 언제나 곁에 살아가는 생명들을 잘 보살피죠. 장항습지에서 활동할 때도 그랬어요. 여름에는 버드나무를 감은 가시박을 걷어내고, 겨울에는 두루미들과 큰기러기들을 보살폈죠.
# 모감주나무와 나
진천 미호강변에는 제가 심은 모감주나무가 자라고 있어요. 진천에서 생다진천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2023년에 현대모비스 임직원들과 진천군 관계자들과 다같이 모여서 모감주나무를 심었지요. 나무는 이듬해부터 꽃을 피워서 우리를 기쁘게 했어요. 7월 어느 날은 모감주나무 인근에 작은 꽃밭을 만들었는데, 당시 염키호테 대표님과 내기를 했어요. 그는 모감주 꽃이 아직 있을 거라고, 저는 다 졌을 거라고 했죠. 꽃이 다 진 줄 알았던 제가 내기에서 졌어요. 몇몇 나무들이 여전히 노란 꽃을 매달고 있었죠.
나의 모감주나무가 잘 지내는지, 종종 떠올리곤 하죠. 한번은 진천에서 일하는 연태희 반장님이 사진을 보내왔어요. 나의 모감주나무 아래에 기념식수 표석이 있는데, 그 주위로 동글동글한 자갈 돌을 모아서 단장을 했더군요. 그가 강가의 돌을 하나하나 모았죠.
연태희 반장님의 애정이 느껴지는 자갈 돌.
모감주나무를 처음 만난 것은 이곳 상암동으로 이사온 다음이었어요. 집 앞 하늘공원에는 모감주나무들이 자락길을 따라 심어져 있어요. 초여름이면 황금빛 꽃을 피우고 비가 내리고 나면 카펫을 깔아 놓은 것처럼 수북하게 꽃이 쌓이죠.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 여름,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서울에 올라온 저녁에 그 길을 걸었죠. 모감주나무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나고 서편 하늘로 주홍빛 노을이 물들었죠. 땅을 디디고 선 저의 시선은 모감주나무를 지나 하늘로 향했죠. 아버지, 이제 그곳에 계신가요? 멈춰 서서 하염없이 하늘 저편을 바라보았죠.
# 모감주나무와 한강
한강이 모감주나무를 심기 시작한 건 진천 미호강이었어요. 그곳에 자생하는 왕버들도 꽤 심었지만 밀원식물을 더 심으면 좋겠다 싶어 심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난 번에는 고양에서도 심었지요. 예전에는 이름조차 모르던 모감주나무가 한강에서 일하는 덕분에 이제는 친근한 나무가 되었죠.
나무는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죠. 나무의 아름다움, 나무의 생명력, 그리고 나무의 미덕을 보며 우리는 나무와 관계맺기를 하죠. 저 역시 그렇습니다. 때로 애틋하게, 때로 찬탄하며, 때로 위안을 받으며 나무 곁에서 살아가죠.
산책을 하다가 만나는 나무들에 대하여 짧은 글을 써두곤 해요. 이 편지를 쓰다가 몇 년 전 쓴 글을 찾았어요.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와 모감주나무 이야기를 썼죠. 그 때 글을 일부 옮겨봅니다.
이제 5월이 되면 한강은 강과 숲으로 걷고 꽃과 나무들을 만나는 행사가 많습니다. 같이 걸으며 나무 아래서 쉬고 꽃향기에 취해 보면 어떨까요?
평안한 봄날 되시길 바라요.
<나의 자연산책 – 모감주나무> 부분
요즘 산책길에 모감주나무 군락을 마주한다. 씨앗으로는 염주를 만들기도 한다는데, 영어로는 황금비나무(Golden rain)이다. 황금비처럼 화려한 꽃을 피우기 때문일 것이다. 모감주 나무 아래 서면 황금비가 쏟아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모감주라는 이름은 정겹고 황금비라는 이름은 환상적이다.
어제는 모감주나무 아래 서 있었다. 무수한 황금빛 꽃을 피운 나무를 오래 쳐다보았다. 꽃줄기 사이사이로 작년에 맺은 시들한 열매가 여태껏 달려있다. 나이가 들어가니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과거의 것, 시든 것, 지나간 것, 지나갈 것, 그리고 늙어가는 것…… 그러나 나무들은 과거의 것, 시든 것을 가장 절정의 꽃대와 함께 몸에 달고 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나무들은 열매나 시든 잎을 한번에 떨구지 않는다는 걸 몇 년 전부터 알게 되었다. 물론 말끔히 떨구는 나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무도 많다. 새봄에 산수유 노란 꽃 필 때 함께 매달린 쭈글쭈글한 붉은 열매를 본다. 떡갈나무 잎이 신록을 자랑할 때 말라비틀어진 갈색 잎들이 나무에 매달려 작게 떨리는 걸 본다. 떡갈나무 시든 잎들은 나무의 생에서 어느 시간을 추억하는 것일까.
우리 언니들이나 나를 보면 엄마를 많이 닮았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 엄마의 옛 사진에서 내 모습을 찾아내기도 한다. 어릴 땐 길을 가면 옆 동네 아주머니가 나보고, 너 순심이 딸이냐, 물었던 기억도 난다. 아직 언니들이나 나는 황금꽃을 달고 있는 모감주나무처럼 생기와 삶에 대한 열정이 살아 있다. 그리고 나무를 보며 나는 또 깨닫는다. 지난 시간의 열매를 달고 있는 저 나무처럼, 내 안에는 늙고 기억을 차차 잊어가는 엄마가 있다고. 같이 살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