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 음악은 멀어진 듯하다 다시 눈을
2025. 11. 26.
은미씨의 한강편지 326_한밤의 세음
거실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 음악은 멀어진 듯하다 다시 눈을
은미씨의 한강편지 326_한밤의 세음
가을 ⓒ김원
거실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 음악은 멀어진 듯하다 다시 눈을 뜨면 가까이 들리는군요.
오늘은 왜 이렇게 잠이 안 오고 말똥말똥할까… 오늘 두번째 커피를 마신 건 점심 직후였으니 그리 늦지도 않았는데. 오랜만에 J가 와서 왈칵 반가워서 괜히 기분이 좋았고 함께 점심을 먹었지요. 지난 여름 암 수술을 하고 잘 이겨낸 그는 얼굴이 어린 아이처럼 맑았어요. 혼자서 중랑천 현장을 둘러보고 온 이영원 선생님도 함께 뜨거운 국을 먹었어요. 비가 조금 내린 다음이었고 바람이 차서 푹 끓인 대구탕은 속을 덥혀 주었지요. 미나리도 입 안에서 향긋했고.
점심을 먹고 들어와서 고은이 신맛이 강한 드립 커피를 내려줬어요. 고은은 꽃무늬 찻잔에 받침까지 해서 내어주더군요. 정희와 웅과 영원과 같이 앉아 겨울에 중랑천에서 할 일들을 두런두런 이야기했어요.
커피 탓은 아닐텐데 왜 이리 잠이 안 오는 것일까. 내일은 또 내일 일들이 바쁠 텐데 이렇게 잠이 들지 못하면 어쩌나… 베개에 얼굴을 파묻기도 하고 몸을 옆으로 누였다가 바로 눕기도 하고 팔베개를 하기도 하고 뒤척뒤척. 결국 일어나 거실로 나옵니다.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는 척하던 고양이 마루가 슬그머니 따라 나오는군요.
여전한 초록 ⓒ김원
# 아버지와
지금은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시 듣는 시간. 이렇게 깊은 밤에 세음을 듣고 있자니 아버지와 함께 보내던 그 밤이 떠오릅니다.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고 하루하루 기력을 잃던 아버지의 마지막 날들. 그 여름에 병실에서 혼곤히 잠든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의 손등과 어깨, 이마를 쓸어보며 밤을 지새울 때 듣던 라디오의 세음…
오늘은 (자정이 넘었으니 어제라고 해야겠군요) 마음이 갈피를 잡을 수 없고 복잡한 날이었어요. 아침에 전화 한 통을 받았기 때문이었죠. 지난 8월 암 진단을 받았던 지인께서 갑자기 위독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늘 자기 관리를 잘 하시고 남들에게 조금도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성품이시라 아픈 것도 주변에 알리기 싫어하셨어요. 치료 잘 받으시고, 곧 뵐 수 있겠거니 했는데 어쩌면 다시 뵙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가서 만났을 텐데, 가서 모든 게 고마웠다고, 참 멋진 삶을 사셨다고, 존경한다고,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분의 상황도 모르고 일요일 밤에 그분께 카톡을 보냈습니다. 기도하고 있다고, 좋아지실 거라고, 힘내시라고… 그 카톡의 1자 표시는 여전히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어제는 우연히도 이전에 아팠다가 이겨냈거나, 여전히 이겨내고 있거나 하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저도 나이를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이런 소식을 듣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군요.
배추밭에서 연태희 반장님
배추를 옮기는 지연 고은 그리고 웅 박사
# 효미와
어제는 진천에서 배추가 왔습니다. 진천에서는 태희 반장님이 배추를 키웠고 옆에서 효미와 인희가 거들었어요. 효미는 올해 가족이 아파서 마음 고생이 많았어요. 힘들었을 텐데, 그녀는 늘 웃음어린 얼굴로 “괜찮습니다.” 하고 말하죠. 늘 손도 빠르고 많은 일들을 척척 해내는 그녀는 올해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 것 같아요.
트럭 한 차 가득 배추가 오니 한강의 집에 있는 활동가들이 모두 나서서 옮겼습니다. 재혁과 지연, 웅, 고은과 정희… 한강의 일을 하는 데는 누구 하나 몸을 사리지 않죠. 밖에 나와 있던 저는 우리 한강 활동가들이 배추를 나르는 사진을 한참 보고 또 보았어요. 애틋하고 고마웠습니다. 다들 아프지 말고 평생 오래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