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강을 생명체로 존중하는 시대입니다. 시민과 강은 공존해야 합니다. 강은 시민을 살리고, 시민은 강
2025. 11. 13.
은미씨의 한강편지 324_강달수의 '시민의 한강'
‘지금은 강을 생명체로 존중하는 시대입니다. 시민과 강은 공존해야 합니다. 강은 시민을 살리고, 시민은 강
은미씨의 한강편지 324_강달수의 '시민의 한강'
여의도 서울항을 출발하는 참가자들 ⓒ장영승
# 강을 살리는 시민
‘지금은 강을 생명체로 존중하는 시대입니다. 시민과 강은 공존해야 합니다. 강은 시민을 살리고, 시민은 강을 살려야 합니다. 가능성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입니다. 황복의 한강, 수달의 한강, 시민의 한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고 또 오는 시대에 가고 또 가야 할 한강의 미래이고, 시민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시민의 한강’을 창립합니다.’
(시민의 한강 창립선언문 부분)
안녕하세요? 한강 전문 기자 강달수입니다.
오늘은 지난 11월 9일 선유도에서 있었던 ‘시민의 한강’ 창립행사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저는 태어난 곳도 한강, 살고 있는 집도 한강이다 보니 이번 행사가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강을 지키는 시민, 시민을 지키는 강’
이런 슬로건으로 시민의 한강이 출범했는데요. 각계에서 모인 300여명의 시민들이 시민의 한강, 생명의 한강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날 오후 2시에는 1부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표적인 한강 개발 사업 현장 중 하나인 여의도서울항에서 출발하여 과거 아름다운 선유봉이 있었던 신선의 땅 선유도까지 걸었습니다. 선유도에서는 창립대회를 위하여 미리부터 온 한강조합 활동가들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김원 작가의 한강 사진전이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원 작가와 허재영 전 국가물관리위원장 ⓒ장영승
김원 작가는 올해 출간한 ‘한강, 1968’의 저자로 이름을 날린 분인데요. 이 분은 4대강 영화로 인기를 끈 ‘추적’ (최승호 감독)의 주연배우이기도 합니다.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김원 씨는 꽤 잘생겨서 계속 영화배우만 해도 될 것 같은데, 올해는 ‘한강, 1968’ 북 콘서트나 강연에 불려다니는 일로 무척 바빴다고 합니다. 그는 한강의 과거 사진들을 샅샅이 찾고 자료를 뒤져 한강의 역사는 개발과 수탈의 역사임을 깨달았습니다.
‘한강은 금빛 모래의 강이었습니다. 130년 전 영국 여인의 눈에 한강의 물과 모래는 ‘천국의 향기’처럼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60년 전 밤섬 사람들에게 한강은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40년 전 광나루 모래사장에는 30만 명이 모여 물놀이했습니다. 위에서 내려온 강물과 아래에서 올라온 바닷물이 연대하여 물속의 황복을 키웠고, 강가의 수달에게 안식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강을 알기 이전부터 강은 늘 저만치 앞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시민의 한강 창립선언문 부분)
사실 시민의 한강 창립선언문도 김원 씨가 작성했다고 합니다. 그의 책 내용을 요약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가 라다크를 ‘오래된 미래’라고 한 것처럼 그도 한강의 과거 모습이야말로 한강의 오래된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의 한강 참가자들 ⓒ장영승
전형적인 늦가을 날씨 속에서 선유도에는 소풍을 나온 시민들이 가득했습니다. 이들은 한강 사진전을 보며 모래사장 펼쳐진 한강 모습에 신기해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 친구들끼리 놀러 온 어르신들, 데이트하러 나온 커플들이 사진을 유심히 봤습니다. 잠실여고 동창생들끼리 같이 왔다는 어르신들 중 한 분은 광나루 모래밭을 추억했습니다. 사진을 가리키며 “여기 내가 수영하고 놀던 데야.”하고 말씀하셨지요.
엄마아빠를 따라온 아이들은 사진은 별 관심이 없고, 접수대에 놓인 달수 인형에 관심을 가지더군요. (저 강달수를 모델로 만든 인형과 키링입니다.) 아이들은 달수 인형을 사고 싶다고 엄마아빠를 졸랐습니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한강 이정민 활동가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어린이가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않고 한강을 깨끗이 해주면 한강에서 달수를 만날 수 있어요. 나중에 엄마 손잡고 달수 보러 오세요, 알았죠?”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약속합니다.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장영승
여울소리 합창단의 축하공연
# 시민을 살리는 강
창립대회를 시작하며 샛강에서 활동하는 샛강시민위원회 합창단 여울소리가 축하공연을 했습니다. 경쾌한 노래들이 가을 하늘 높이 퐁퐁 솟아올랐습니다. 앵콜 곡으로 김소월 시 ‘엄마야 누나야’를 부르자 참가한 시민들도 다같이 따라불렀습니다. 취재하던 저도 괜히 울컥했는데요. 저 역시 엄마랑 누나랑 강변에 살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시시때때로 강바닥이 파이고 나무들이 베어져 몇 번이나 이삿짐을 싸야 했으니까요. 요즘은 샛강에서 살고 있고, 밤섬과 선유도에는 가끔 놀러옵니다. (샛강도 올해는 공사판이 자주 벌어져 이사를 고민하고 있긴 합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우리가 꿈꾸는 한강’이라는 주제로 열린 토크 콘서트였습니다. 최승호 피디가 사회를 맡고 김원 작가,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이사 (젊은 청년입니다.), 구청장 시절부터 생태적 하천 만드는 일에 진심이었던 김영배 국회의원, 그리고 저도 좋아하는 나희덕 시인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민규 청년은 한강에서 살아가는 고라니들의 팍팍한 삶을 호소하며 한강 리와일드 (재야생화)를 주장했습니다. 나희덕 시인은 앞으로 한강에 대한 시집을 내겠다고 하고, 김영배 의원은 한강 자연성 회복과 시민이 주인되는 한강을 위해서 전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번 창립행사를 취재하며 저 자신도 기쁘고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우리 가족도 앞으로 안심하고 강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희망도 품어봅니다. 올해만 해도 우리 동네에 돌아다니는 한강버스 때문에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닙니다. 시민들이 한강을 잘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참에 저도 시민의 한강 회원가입을 했습니다. 모래 한 알 보태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시민의 한강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 언제라도 회원 가입을 하실 수 있다는 점도 알려드립니다. 지금까지 강달수였습니다.
‘눈을 떠야 합니다. 강을 눈요깃거리로 소비하던, 강의 모래를 돈으로 남용하던 눈을 떠야 합니다. 그래야 소월의 강이 보이고 고유의 강이 보입니다. 비로소 한강이 한강으로 살아납니다. 물속에서 즐길 수 있는 강이어야 합니다. 콘크리트를 걷어낸 자리를 끝없는 모래사장이 차지해야 합니다. 물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속 발가락을 스치는 모래의 움직임에 감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해의 황복이 여의도를 찾아오고, 한강의 수달이 중랑천과 탄천을 오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