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59년에 대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직장은 서울에서 다녔고 회사에서 환경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
2025. 11. 7.
은미씨의 한강편지 323_이영원입니다
저는 1959년에 대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직장은 서울에서 다녔고 회사에서 환경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
은미씨의 한강편지 323_이영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한강애인 이영원입니다.
이렇게 한강편지를 통해서나마 인사를 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1959년에 대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직장은 서울에서 다녔고 회사에서 환경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염대표님을 비롯하여 환경운동 하시던 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력을 바탕으로 서울시 녹색위원회에서도 4년 활동했지요. 염대표님에게는 은퇴 후에는 자원봉사를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제 말을 기억했던 것인지 2018년 여름 염대표가 연락해왔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이라는 걸 만들게 되었으니 많이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듬해 봄에 한강조합은 여의도샛강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다소 황량하던 곳이었는데 가시박을 정리하거나 나무를 심을 일이 많았습니다. 책상물림이다 보니 몸을 쓰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도 샛강생태공원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보람이 컸습니다. 가끔은 카메라를 매고 버드나무 숲의 초록과 분분히 떨어지는 벚꽃 분홍을 사진에 담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찍는 일은 저의 오랜 취미입니다. 가끔 사진들을 추려서 조대표에게 보내주면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골라 한강편지에도 넣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2019년 샛강
샛강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했지만 88로변에 사철나무를 심는 일은 고된 일이었습니다. 땅을 파면 푸석푸석한 얇은 토양은 양분이 하나도 없어 보였습니다. 게다가 곳곳에 쓰레기가 박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 곳에 어린 사철나무를 심었습니다. 샛강에서 물을 퍼와서 줬는데 날이 가물 때는 걱정이 컸습니다.
은퇴 후 샛강에 자주 나왔지만 이후 재취업을 하고는 자주 오기 어려웠습니다. 그 시기에는 대신 일과 후 인문학 강좌를 들으러 왔습니다. 김영 교수님의 노자, 장자, 맹자, 공자 강의까지 가능한 대로 다 들었습니다. 저는 역사책이나 동양 고전 같은 책을 꾸준히 읽습니다. 자연 속에 있거나 차분히 쉬며 책을 보는 시간이 저에게는 가장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중랑천에서 일하는 이영원 선생님 ⓒ권정애
# 중랑천에서 삽니다
샛강사태가 나고 저도 샛강을 지키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참여를 했습니다. 샛강시민위원회 행사에 가능한 대로 자리했고, 시위를 해야 할 때에도 머릿수 하나라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가 샛강센터를 폐쇄한 지난 여름 이후 샛강을 거의 가질 않습니다. 대신 이번에도 염대표가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더군요. 중랑천 박기철 반장님이 당신의 꿈을 좇아 일을 그만두었기 때문입니다. (저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그는 영화배우의 꿈을 품었다고 들었습니다.)
자원봉사나 했지 현장일을 해본 적이 없어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샛강에서 밀려난 한강조합이 중랑천에서라도 어떻게든 자리잡아보려고 애써왔는데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8월경부터 샛강이 아닌 중랑천에서 현장 일을 거들게 되었습니다. 홍반장님, 로맨님을 비롯한 우중가님들 모두 열심히들 합니다. 또 저와 비슷한 시기에 중랑천팀으로 오게 된 유웅 선생도 묵묵히 일을 해내지요. 그런대로 팀웍이 좋습니다. 중랑천에는 매일같이 할 일도 태산이라 여유 부릴 겨를이 없어요. 여름 지나며 비 피해 복구와 떠밀려온 쓰레기 치우는 것도 한참 했습니다. 가시박 덩굴 정리는 해도해도 끝이 없어 보였는데 그래도 필요한 만큼 원앙 식당 (먹이터)를 만들어 놓을 수 있어 다행이지요.
중랑천에서 가시박 정리 ⓒ로맨
일은 재밌습니다. 그런데 할 일이 많다 보니 저도 모르게 무리하기도 합니다. 지난 추석 연휴 때는 모처럼 쉬나 했는데 갑자기 손이 너무 아팠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근염이라고 하더군요. 그 때문에 한 달여 고생했습니다. 집사람은 왜 그렇게 열심이냐고 타박하기도 합니다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지금 안 하면 곤란하니 어쩔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번 주에도 몇 군데 기업들이 와서 ESG 활동을 하고 갔고, 그런 행사가 있으면 사전 사후 작업이 많습니다. 그 와중에도 내년 봄을 기약하며 작약을 넉넉히 심은 것은 흐뭇했습니다. 내년에 꽃을 잘 피우길 기대합니다. 또 이번 주에는 에코피스아시아 협력사업으로 명자나무와 사철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동부간선도로변에 심어야 할 사철나무는 2200주나 됩니다.
사철나무를 심다가 중간중간 쉴 때 허리를 펴고 중랑천을 바라봅니다. 물가에는 새들이 내려앉아 먹이를 구하고 있고 강물은 윤슬에 반짝거립니다. 바로 곁에는 도로변 차소리가 시끄럽기 이를 데 없지만 우리가 지키는 자연 속 생명들은 애틋하게 마음이 갑니다.
6년전 이맘때에는 샛강 88로변에 사철나무를 심었는데, 지금은 동부간선도로변에 사철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중랑천은 샛강보다도 더 열악하고요. 오늘까지 해서 이번 사철나무 심기는 마무리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물을 주는 일을 신경써야 하고, 작년에 심어놓은 나무들을 감싼 덩굴을 제거해주는 일도 해야 합니다. 곧 다가올 원앙축제 행사장 준비도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보람은 있습니다. 저에게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주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가치 있게 살고 싶습니다.
중랑천은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좋아집니다. 여전히 꽃들이 만발하고 새들은 점점 더 몰려들고 있습니다. 통나무 의자에 앉아 강물을 가만히 보다 보면 물고기가 힘차게 튀어오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