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후에 여의도 도심에 있는 샛강생태공원에서는 특별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 40여
2025. 10. 23.
은미씨의 한강편지 321_여의도 샛강의 추수하는 사람들
지난 일요일 오후에 여의도 도심에 있는 샛강생태공원에서는 특별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 40여
은미씨의 한강편지 321_여의도 샛강의 추수하는 사람들
샛강에 추수하러 온 아이 ⓒ정성후
지난 일요일 오후에 여의도 도심에 있는 샛강생태공원에서는 특별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 40여명이 모여 추수를 했습니다. 벼를 베고 홀테로 이삭을 털고 볏단을 묶었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같이 조심스레 낫을 잡아 벼를 베었지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나온 시민도 강아지를 잠시 맡기고 벼 베기에 참여합니다.
샛강 수달교 옆 작은 논에서의 추수는 한바탕 잔치였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먼저 벼베기 체험을 하고 나서 어른들도 한 명씩 낫을 잡습니다. 샛강에 매일같이 나오는 팔순의 김정순 선생님은 평생 벼 베기는 처음이라며 환하게 웃습니다. 여주에서 나고 자란 정지환 위원장은 숙련된 솜씨로 빠르게 쓱쓱 베어내고 볏단을 묶습니다. 올해 내내 노심초사 벼농사를 거들었던 박중흠 선생님은 추수를 지도하며 흐뭇하게 너털웃음을 짓습니다. 아이들은 벼를 한줌씩 쥐고 이삭을 털기 위해 홀테에 집어넣습니다. 알곡을 키질하고 나서 입에 넣어 먹어보기도 합니다. 키질을 하던 어느 어른은 어릴 적 오줌을 싸서 키를 쓰고 소금 얻으러 다녔던 추억을 실토합니다. 한 아이는 절구질하고 까불려 마침내 쌀이 된 결과물을 한 줌 들고 먹어보고 싶다고 주머니에 넣습니다.
추수하는 샛강지기들 ⓒ이강인
‘샛강에는 수달 이마짝만한 논이 있습니다.
올 봄 모내기를 하고 침수 장마 때 벼가 상할까, 샛강지기 단톡방에 걱정의 한숨이 길어지고물이 빠지자 게릴라 초보농부가 되어 물꼬를 내고, 벼를 일으켜 세우고, 풀을 뽑고 논새참도 나누며, 산책길 오가던 시민들이 어라 제법 농사가 실하네 소리에 지분도 없으면서 우쭐하던 시간을 지나, 어느덧 황금 들판의 모양새가 갖춰지며 벼가 고개를 숙이기도 전에 또 한번 샛강지기들은 들썩이기 시작했다지요. 추수를 해서 밥을 짓네, 떡을 해서 나누네, 술을 빚자까지 나오지 않아 다행이지 뭐야, 하는 생각에 절로 입꼬리가 실룩이는 재미진 구경이었다지요. 하지만 추수한 쌀은 눈 내릴 겨울 먹이가 절대 부족할 샛강가에 깃들어 사는 새들에게 먹이나눔 하자는 훈훈하고도 아름다운 결론이 났어요.’
(10.21. 박경화 ‘떴다 수달언니들’ 대표의 페이스북 글 부분 인용)
도심 속 비밀의 숲, 원시 자연이 살아 있는 생태공원, 수달 가족이 살아가고 맹꽁이가 노래하는 곳,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 1호 생태공원인 여의도샛강생태공원입니다. 여의도 빌딩 숲 옆에 버드나무와 참느릅나무, 뽕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강물과 습지가 수많은 생명을 키우고 사시사철 생명의 노래가 들리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런 샛강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생태공원을 가꾸고 즐기고 배우는 활동을 하는 특별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3년 전에 작은 논이 만들어졌습니다.
생태공원에 논을 만드는 건 처음이 아닙니다. 난지수변생태원에도 예전부터 논이 있었는데 맹꽁이를 비롯한 양서류와 저서생물들에게는 좋은 보금자리이고, 생태교육과 도시농업 교육을 하기에도 맞춤합니다. 또한 수확한 쌀은 겨울철 배가 고픈 새들을 위한 먹이로 나누기에 생명 돌봄과 공존의 의미를 갖습니다.
난생 처음 해보는 추수에 기뻐하는 정순 샘. ⓒ김명숙
논은 단순히 벼농사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논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습지생태계로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생태적 역할을 하지요. 2008년 제10차 람사르 총회에서 채택된 논습지 결의안에서는 논습지가 식량 생산지만이 아니라 생물다양성의 보고임을 국제적으로 인정합니다. 실제로 샛강에서 논을 조성하고 나서 근처 어류 조사에서 전에 보이지 않던 됭경모치를 관찰하는 등 논습지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샛강에 논을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2022년 가을에 당시 서울시 담당공무원에게 간곡히 요청하고 논습지의 중요성을 설득하고 생태적으로 관리를 잘 해보겠다고 약속하여 작은 공간을 허락받았습니다. 그 이전에는 ‘모든 경작행위 금지’라는 식으로 불허했었지요. 그렇게 논을 만들었지만 물을 대거나 적정 수량을 유지하며 논농사를 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첫해는 논의 높이가 낮고 수해가 나서 완전히 망했습니다. 두해째는 공원팀장님들이 논의 높이를 높이고 수로를 바꾸고 흙을 돋워서 그런대로 소출이 났습니다. 올해는 3년째가 된 것인데 논을 관리해오던 한강조합의 위탁운영이 종료되어 논은 방치되고 말았습니다.
방치되어 황량하던 논을 살린 것은 샛강 시민들이었습니다. 샛강을 오가는 시민들은 수달교 논습지를 지나다니며 그동안 비지땀을 흘리며 일하던 한강 공원팀장들, 모내기를 하는 아이들, 추수하는 어른들을 봐왔습니다. 논에 들인 정성과 논이 주던 보람을 알기에 그냥 둘 수가 없었지요. 의기투합한 이들은 5월 하순이 되어서야 모내기를 합니다. 올해는 유난히 날씨가 들쑥날쑥하고 비가 잦았던 해였습니다. 논에는 물이 마르거나 넘치거나 논둑이 무너지거나 병충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논을 돌아보는 분들이 생겨났습니다. 자식 돌보는 마음으로 벼를 키웠습니다. 그런 벼를 추수하니 기쁨의 잔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달에는 갑자기 이 논 앞에 위탁업체가 ‘경작금지’ 팻말이 붙었다고 합니다. 샛강지기들은 추수하지 못할까 전전긍긍 적정을 했는데 다행히 며칠 지나지 않아 팻말은 없어졌습니다. 추수를 마치고 떡을 나누며 시민들은 행복했습니다. 이들의 소망은 내년에도 샛강에서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이 작은 논이 수많은 시민들에게 주는 위로와 희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또한 자연의 여러 생명들을 거두고 먹이고 키우는 고마운 논입니다. 올 겨울 이 쌀을 나누어 먹을 새들도 조금은 더 행복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