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모처럼 긴 연휴였지요. 비가 자주 내렸고 어느 저녁은 불쑥 찬 바람이 불어 은미씨의 한강편지 319_너의 곁에서 오래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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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무는 내 친구는 아니지만
저 나무는 내 가족은 아니지만
나무에 기대는 내 마음
나무가 연주하는 대지의 찬가
(김혜순 시<순교하는 나무들>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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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모처럼 긴 연휴였지요. 비가 자주 내렸고 어느 저녁은 불쑥 찬 바람이 불어 두꺼운 외투를 꺼내게 하더니 어느 날은 더없이 맑고 고운 가을 얼굴을 보여주더군요.
저도 잘 보냈습니다. 한강의 일도 잠시 잊고 온전히 쉬었습니다. 서울에 머물면서 친지들을 만나고 둘러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조카아이가 결혼할 애인을 데리고 와서 흐뭇하기도 했네요. 하루는 박선생님 작업실이 있는 동네에 가서 나경과 셋이서 밥을 먹었고, 또 하루는 북한산 자락을 지나 고양으로 넘어가서 오리백숙과 해물파전을 먹었습니다. 산 아래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자리잡은 식당이었는데, 명절 끝자락이라 그런지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여름에는 이 계곡에 사람이 가득했다고, 식당 주인 내외가 웃으며 말합니다. 오가는 길에 불광동 산 아래 자리잡은 진관사 한옥마을과 삼천사라는 절 구경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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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동안 세간의 인기있는 영화 세 편을 보았고, 또 우리가 일하는 성동 중랑천 부근 살곶이숲이 나온다는 인기 드라마도 봤습니다. 드라마를 보다 보니 자꾸만 다음 편을 연이어 보게 되어 새벽에 잠이 들고, 매일같이 거한 점심을 먹었고, 낮잠을 종종 잤습니다. 그렇게 낮잠이 들면 꿈을 꾸기도 했는데 샛강이 나오는 꿈은 편치 않았습니다. 특히 꿈 속에서 누군가에게 급히 연락을 해서 상황을 알려야 하는데 핸드폰이 잘 눌러지지 않아 초조해하기도 했습니다.
긴 연휴 동안 매일 만오천보 이상 걸었고,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했으니까 좋은 운동화도 한 켤레 사고, 발에게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발 마사지도 받았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밀린 책을 반납했고, 책방에서 책을 샀습니다. 잘 읽히지 않던 수전 손택의 책을 얼추 다 읽었고, chat GPT의 도움을 받아 발제 준비도 마쳤습니다.
이대로 계속 쉬고 노는 삶을 살아도 좋겠다 싶을 마음이 들 정도로 잘 쉬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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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들과 그가 아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 그가 속한 자리다. 그의 것이다. 언덕, 보트하우스, 해변의 돌들, 그 전부가, 그런데 그것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소리처럼, 그렇다 그 안의 소리처럼 그의 일부로 그 안에 머물 것이었다,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문학동네 P.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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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샛강숲에서 이 책의 문장들을 읽었을 거예요. 설희와 창기, 강인, 계선, 미향, 상재, 그리고 락희. 그들에게는 샛강이 이 세상에서 그들이 속한 자리의 일부. 그들은 샛강을 떠나지 않기로 마음먹었지요. 비가 내려서 샛강 인근 북 카페에 모여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노르웨이 어느 해안 마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던 아기의 우렁찬 울음 소리를, 마음 졸이던 아버지를, 그리움 가득한 노년의 회상을 읽었습니다.
샛강에서의 활동은 여전히 어려움이 많지만, 샛강지기들은 꾸준히 샛강의 곁을 지키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고 해요.
비가 내리고 물이 넘칠 때마다 텃논의 벼들을 살피는 중흠과 지환, 쥐방울덩굴이 없어질까 걱정하는 정순, 계수나무 향이 깊어지는 시간을 기다리는 정순, 나무토막들을 땅에 박고 잇대어 비오톱을 만드는 성후와 영수, 그리고 열 명 남짓한 샛강지기들, 맨발로 샛강을 걸으며 샛강을 즐기는 석원과 관훈 그리고 샛숲사, 수달 흔적을 따라다니는 경화, 목요일마다 모니터링 그룹을 이끌고 나눔밥상을 펼쳐내는 명숙과 즐기자팀 샛강지기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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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엇일까요. 저는 곁을 지켜주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연휴에도 샛강의 곁을 지켜주고 그곳에서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일을 하던 샛강지기들처럼 말이지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욘 포세의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은 한 노인의 죽음으로 떠나는 여정을 통해 삶의 애틋함과 사랑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돌이켜보면 꿈같고 찰나 같은 삶의 순간들, 울고 웃고 하면서도 가족과 친구가 있어 그럭저럭 만족하게 살았던 노인은 편안한 마음으로 지상을 떠납니다.
우리 역시 소박하게, 사랑하는 이들에게 곁을 내어주며, 우리의 아침 그리고 저녁을 잘 살아가도록 해요.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하나하나 세어보는 가을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곁에서 잘 지내시길 바라요.
2025.10.10
한강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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