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미래한강본부가 관할하고 o사가 위탁운영중인 여의도샛강생태체험관에 상주하고 있는 샛강 피아노에 대하여
2025. 10. 2.
은미씨의 한강편지 318_갇힌 피아노와 샛숲의 노래
서울시 미래한강본부가 관할하고 o사가 위탁운영중인 여의도샛강생태체험관에 상주하고 있는 샛강 피아노에 대하여
은미씨의 한강편지 318_갇힌 피아노와 샛숲의 노래
피아노가 떠난 자리 ⓒ석락희
# 피아노, 선고받다
피고 : 1985년생 포레스트 피아노
서울시 미래한강본부가 관할하고 o사가 위탁운영중인 여의도샛강생태체험관에 상주하고 있는 샛강 피아노에 대하여 선고를 내립니다.
샛강 피아노는 9월 28일을 기해 체험관 1층 로비에서 즉각 철수해야 하며, 달수방으로 이동 감금됩니다. 어느 누구라도 이 선고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됩니다. 만에 하나 피아노를 탈출시키거나 이동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자는 그 누구를 불문하고 법에 따라 엄정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샛강 피아노의 죄목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고, 그간 미쳐온 영향력이 상당하다 하겠습니다. 피고 포레스트 피아노는 2023년 4월 샛강센터에 왔습니다. 샛강에서 자원봉사 활동과 프로그램 참여를 하던 한강조합원 이모씨가 집안에서 대를 이어 쓰던 피아노를 기증한 것입니다. 당시 위탁사인 한강조합이 피아노를 기증받고 로비에 설치한 것부터가 문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샛강센터는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인데, 피아노와 생태가 대관절 무슨 관련이 있단 말입니까?
생태프로그램 운영에나 집중해야 할 한강조합은 피아노를 가지고 소위 생태문화, 생태예술 융합 활동을 한다며 수시로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자원봉사 활동이 끝나면 수고했다고 봉사자들을 위한 즉석 연주를 해주기도 하고, 프로그램을 들으러 온 아이들이 제멋대로 뚱땅거리며 치기도 했습니다. 이 피아노는 그런 것을 제지하기는 커녕 오가는 시민들 누구에게라도 자리를 내줬습니다. 특히 여의도 주민들이 자주 와서 몇 곡씩 쳐댔는데 그 때문에 샛강센터가 공공시설인지 음악회장인지 라이브 카페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샛강 피아노는 sns에서도 소문이 나서 멀리 가평에 사는 젊은 여인이 홀연히 나타나 연주를 하고 가기도 했습니다.
샛강 피아노는 그 존재 자체로 인하여 시민들에게 아무 때나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었으며, 샛강센터에 동네 주민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 앞에 죽치고 앉아서 박수치며 노래를 부르게 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이 엄숙한 공공시설을 제멋대로 이용하도록 피아노가 야기한 것입니다. 이처럼 피아노는 여의샛강생태체험관과 여의도샛강생태공원 고유 목적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을 제공하여 본질을 흐리게 하였으니 그 죄가 크다 하겠습니다. 2년여 시간이 흘러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격리 조치를 취하여 샛강체험관과 생태공원 본연의 목적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재개관한 샛강센터 ⓒ석락희
# 샛숲의 노래
“샛강센터에 처음 들어갔을 때 받은 인상은 이사간 집에 다시 가 본 듯한 생경함과 아이들 놀던 시끄러운 소리가 사라진 하교 후의 학교를 돌아보는듯한 적막감이었습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어머~설희샘 하고 활짝 웃으며 맞아주던 은미샘의 목소리도 없는 샛강센터는 이제 우리가 익숙하게 드나들던 그 곳이 더 이상 아니더군요…”
(9월 30일 임설희 샛강지기의 카톡 글에서)
여전히 뜨겁던 한여름 8월 중순에 샛강센터는 전면 폐쇄되었습니다. 그 사이 샛강지기들은 때로 작열하는 태양, 때로 빗발치는 빗줄기 아래서도 샛숲에 모였습니다. 샛강센터가 열려 있더라면 더위도 피하고 시원한 마실 것들과 간식도 나눠 먹고, 피아노 연주도 듣고, 생태공부도 했을 테지요. 하지만 그 여름에 샛강센터는 꼭꼭 닫혀 있었고 공공안전관들이 닫힌 센터를 지키고 있었으니 감히 드나들 수는 없었습니다. 샛강지기들은 센터 아래 놀이팡에 모여 샛강다방을 열어 오가는 시민들과 음료를 마셨고, 자원봉사를 마친 다음에는 집에서 가져온 나물 따위를 섞어 비빔밥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렇게 견디고 이어가다 보니 드디어 이번 주 월요일에 샛강센터 문이 다시 열렸습니다. 그러나 그 문은 샛강지기들에게 열린 게 아니었습니다.
센터 로비에서 누구나 반겨주던 피아노는 사라지고 (ㅇ사 센터장에게 물으니 달수방으로 치웠다고 했답니다.), 샛강지기들이 모여서 활동하던 테이블들은 여기저기 떼어 놓았습니다. 모이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화요일에 샛강지기 세 분이 센터를 둘러보았습니다. 도어락이 설치된 방들, 닫힌 방들을 둘러보는데 공공안전관 세 명이 지켜보고 있었다고 하네요.
샛강지기들의 낙담, 분노, 허탈감 같은 것들이 카톡방에서 전해집니다. 그 와중에 임설희 선생님은 10월부터 ‘책 읽으며 가을 샛숲 즐기기’ 낭독모임을 한다고 하네요. 찬 바람이 불기 전까지는 샛숲에서 아늑하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샛숲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녀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피아노는 감금되었지만, 샛숲의 노래는 계속 이어질 것 같군요.
# 운정호수에서
어제는 모처럼 한강조합 유유자적의 날을 보냈습니다. 9월부터 위탁운영을 시작한 파주시 환경통합센터를 응원하기 위하여 지역의 활동가들이 다들 모였습니다. 오두산 전망대에 올라 임진강 물줄기와 한강 물이 만나는 것도 보고 북한 마을도 바라보았습니다. 갯벌에 앉은 새들을 보며 이름을 맞춰보기도 했지요.
환경통합센터는 운정호수공원 한가운데 있는데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있습니다. 염키호테님은 운정산이라고 부르자고 하던데, 저는 작은 동산이라 운정동산이라 하자고 했지요. 너른 풀밭이 나타나자 운동회 같은 걸 하고 싶어졌습니다. 즉석에서 놀이를 했습니다. 몸을 쓰며 놀고 웃고 떠드는 게 얼마나 좋던지요.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곁에서 함께 일하는 한강 동료들이 더 애틋하고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곧 추석이 다가옵니다. 질기던 무더위도 이제야 좀 누그러졌지요. 모처럼 긴 연휴 동안 평안하게 잘 보내시길 빕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강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