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어제 저에게 오세훈 시장이 제기한 명도소송 소장이 도착했습니다. 여의샛강생태체험관 건
2025. 8. 14.
은미씨의 한강편지 311_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어제 저에게 오세훈 시장이 제기한 명도소송 소장이 도착했습니다. 여의샛강생태체험관 건
은미씨의 한강편지 311_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샛강선셋투어 진행하는 정지환 위원장
소장 : 건물인도 청구의 소
원고 : 서울특별시 대표자 시장 오세훈
피고 :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자 조은미
청구취지 : 피고는 원고에게 별지목록 부동산을 명도하라.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어제 저에게 오세훈 시장이 제기한 명도소송 소장이 도착했습니다. 여의샛강생태체험관 건물을 인도하라는 소송입니다.
우편으로 배달된 두툼한 소장 뭉치를 보니 실로 참담합니다. 샛강을 떠난 지가 6월 하순입니다. 한강이 쓰던 공간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트럭으로 몇 차례 짐을 날랐습니다. 제가 가끔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오갈 뿐 한강 활동가들은 이제 걸음도 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시민으로서 갈 수 있는데도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샛강에서 일하던 활동가들은 한동안 서울의 다른 한강변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 공무원들은 한강조합을 무슨 블랙리스트에라도 올렸는지 그마저도 중단하라고 통보했습니다. 폭염 속에서도 쉬지 않고 가시박을 제거하고 쓰레기를 치워내던 샛강 활동가들에게는 이것이 두번째 상처가 되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각고의 노력 끝에 파주시 환경통합센터 민간위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과거 샛강팀은 임팩트팀으로 이름을 바꾸어 파주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환경교육, 탄소중립, 유아기후환경교육이라는 세 가지 큰 과업을 해내야 하기에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에 매진하다 보니 샛강에서 겪었던 여러 아픔과 고통도 이제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아니, 어쩌면 그 상처가 너무나 컸기에 애써 지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8월 13일 받은 서울시의 명도소송 문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오세훈시장이, 더 정확히는 그의 의중을 따르는 박진영 미래한강본부장이 저에게 샛강센터를 넘기라고 비싼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했습니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샛강에서 이미 쫓아낸 시민단체에게 건물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건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놓을 것이 없는데 왜 그럴까요?
법원이나 경찰서에서 서류 송달이 오거나 전화가 오면 겁부터 덜컥 납니다. 책이나 읽으며 평범하게 살아온 제가 법원이나 경찰서에 갈 일이 뭐가 있었겠습니까.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가거나 재판에 출석하는 일, 서울시의 억지주장에 반박서면을 쓰는 일까지 밤낮없이 대응하며 나날이 피폐해져 갑니다. 공권력이라는 것은 무시무시한 것이죠.
재판장님, 저들에게 무엇을 넘기라는 것인지 물어봐주실 수 있는지요? 저희가 아무리 여러 번 공문을 보내도 그들은 절대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저 법원과 경찰서를 통해서만 공격을 해오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갖고 있지도 않은 건물을 어떻게 넘겨줄 수 있는지요?
샛강에 관하여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샛강에서의 추억과 여전한 사랑이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것들이지요. 추억은 넘길 수 없으니, 사랑의 마음을 넘겨야 할까요? 서울시와 이음숲이 저의 사랑을 소중히 다뤄준다면 그마저도 넘기겠습니다. 하지만 그럴까요? 가시박과 환삼덩굴에 뒤덮여 힘겨워하는 샛강의 나무와 풀들, 서식지가 훼손되어 불안해하는 수달들, 도움을 받지 못하는 뽕나무들… 그들을 위해 근심하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넘겨야 합니까?
샛강에서 노는 샛강지기님들 ⓒ.정지환
서울시와 위탁업체 이음숲은 건물을 잘 쓰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8일에는 돌연 공고문을 붙여 정비공사를 해야겠으니 건물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은 전부 활동을 중단하고, 집기들을 반출하라고 붙였습니다. 공고문을 붙인 다음 날은 1층 정문 바로 옆에 기동순찰대 방을 두 개 만들었습니다. 제복을 입은 기동순찰대는 두엇씩 센터를 어슬렁거리며 오가는 시민들을 감시합니다.
급기야 그제 8월 12일에 서울시와 이음숲은 샛강시민위원회 대표단을 만났습니다. 전해듣기로 샛강센터에 있는 물품들을 어떻게 처분할지 논의했으며, 시민들에게 지금처럼 센터를 자유롭게 써서는 안 되며 나중에 공모를 통해서만 샛강센터에 와서 활동해야 한다고 했답니다.
애석한 일입니다. 샛강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시민들에게 자원봉사도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하질 않나, 민원을 넣으면 거짓말로 대답을 하지 않나,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는 시간에 로비 피아노를 치면 이음숲 센터장이 나타나 화를 내지 않나… 이러다가 급기야 안전공사가 시급하다며 다들 나가라고 한답니다. 돈을 지원해주지 않는데도 돈을 받고 위탁운영을 하는 이음숲보다 더 활발하니 불편한가 봅니다.
샛강의 노을 ⓒ.정지환
존경하는 재판장님,
우리 한강에게 샛강은 이미 과거입니다. 눈물을 머금고 그곳을 떠났고, 샛강시민들이 지켜주시기에 그나마 위안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숱하게 거짓말을 하며 샛강시민들까지도 쫓아내려 한 그들은 그게 잘 안 되니 우리에게 샛강 건물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재판장님, 내놓을 것이 없으니 괜찮다고 하지 말아주십시오. 이미 그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서울시는 우리를 모욕하고 괴롭히기 위하여 이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샛강의 아름다운 자연과 공동체만은 지키고 싶었던 우리를 불법 집단으로 매도하고 명예를 실추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오세훈의 서울시에게 책임을 물어주십시오. 우리의 잘못이라면 샛강에 대한 사랑이 터무니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처벌받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진심이 아니라 그들의 거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