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민간위탁 탈락 이후 5개월. 샛강 때문에 울고 분노하고 저항하고 소리치고 애를 태우고 슬퍼하고
2025. 8. 1.
은미씨의 한강편지 309_산들할머니와 샛강지기들 300
2월 28일 민간위탁 탈락 이후 5개월. 샛강 때문에 울고 분노하고 저항하고 소리치고 애를 태우고 슬퍼하고
은미씨의 한강편지 309_산들할머니와 샛강지기들 300
7월도 다 갔습니다.
2월 28일 민간위탁 탈락 이후 5개월. 샛강 때문에 울고 분노하고 저항하고 소리치고 애를 태우고 슬퍼하고 걱정하고 절망하던 시간이 그렇습니다. 동시에 샛강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놀라고 감탄하고 사랑하고 연민하고 웃고 노래하고 배우고 나누고 돌보고 사귀고 설레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게 겨우 5개월인가 싶기도 하고, 100년쯤이나 흐른 듯이 까마득하기도 하네요.
서울시 미래한강본부 공무원들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이나 (“뽕나무 녹병균 방제 작업을 실시했습니다.”) 뜬금없이 샛강센터에 기동순찰대를 배치하여 시민들을 감시하려 드는 것은 이제 화도 나지 않습니다. 샛강공원 곳곳에 가시박과 환삼덩굴이 창궐하여 공포영화 같은 음산한 풍경이 펼쳐지지만 현실이 아닌 양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그토록 편안하게 이용하던 샛강센터에는 점점 ‘사용금지’ 같은 글자들이 늘어납니다. 급기야 지난 7월 18일에는 공고문이 붙었는데 7월 31일까지 시민들은 모든 프로그램과 활동을 중단하라고 합니다. 서울시 이외 물건은 전부 반출해야 하며 안 그러면 폐기하겠다고 하는군요.
(샛강지기들이 외칩니다. ⓒ.정성후)
# 7월 30일 샛강지기들 시위하다
우리 계속 공부하게 해주세요.
우리 앞으로도 노래하게 해주세요.
드르륵 짠 계속하게 해주세요.
논농사 계속 하게 해주세요.
샛강지기들이 모여서 작은 소리로 구호를 외칩니다. 당장 8월부터는 나가라는 서울시 공고문에 대한 항의입니다. 한 분이 이렇게 정정하는군요. “해주세요” 말고 “할래요” 합시다! 그래서 이들은 구호가 금방 달라집니다.
샛강에서 계속 인문학 공부할래요.
샛강에서 계속 노래할래요.
우리 논농사 계속할래요.
샛강에서 드르륵 짠 할래요.
시위를 시작하니 기동순찰대 두 남자가 방에서 나옵니다. 샛강지기들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살피니 조금 주눅이 드는군요. 그래도 명랑한 샛강지기 한 분이 다가갑니다.
“저희 사진 한 장 좀 찍어주실래요?”
그러자 당황한 경찰이 대답해요.
“보고부터 하겠습니다.”
결국 경찰의 도움은 받지 못하고 샛강지기들끼리 사진을 찍고 마무리했답니다.
(산들이와 산하, 그리고 할머니 ⓒ.김정순)
# 7월 31일 샛강지기들 모이다
어린이집 방학이라 이번 주는 꼼짝없이 손주들 봐야 하는 산들과 산하 할머니. 샛강에서 들려오는 시시각각 소식에 애를 태우며 카톡 소식만 보고 있습니다. 그런 산들 할머니가 오늘은 어린 손주들을 데리고 지하철을 갈아타며 샛강으로 왔습니다. 아직 기저귀도 떼지 않은 두 살 손자와 여섯 살 손자를 데리고 과천에서 여의도 샛강까지 왔어요. 방학이라 아이들은 물놀이장을 예약한 것인데, 할머니는 산들에게 상의합니다.
“산들이가 좋아하는 샛강 놀이팡이 없어질지도 몰라. 할머니랑 샛강 지키러 같이 갈까?”
할머니가 가자고 하니까 산들이는 할머니 손을 잡고 샛강에 왔습니다. 하지만 산들이 마음은 어땠을까요? 전날 엄마가 물놀이장을 예약했다고 알려주었을 때, 산들이는 기분이 좋아 씨익 웃었습니다. 물놀이장엔 정말 재밌는 게 많거든요. 동생이랑 실컷 놀고 나면 할머니는 아이스크림이며 과자도 많이 사주죠. 할머니가 샛강 가자고 물어볼 때, 산들이는 고개를 저을까 잠깐 망설였어요. 하지만 할머니 표정을 보니 좀 슬퍼보였어요. 그래서 산들이는 작게 대답하고는 할머니 손을 잡았어요.
“산들아. 오늘은 물놀이장 대신에 샛강 두물머리에서 노는 거야.”
뜨거운 햇살 아래 아스팔트 길을 걸어서 샛강센터에 도착한 산들. 어른들 40여명이 모여서 두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산들이는 할머니 곁에서 조용히 머물렀어요. 어린 아가인 동생이 혹 떠들면 안 되니 할머니 대신 산하를 살펴보기도 했어요. 그렇게 긴긴 시간이 지나고 밥을 먹었어요. 수박이나 빵, 김밥은 좀 먹었지만 아이스크림도 햄버거도 없어서 조금 실망했어요.
“자, 이제 물놀이 가볼까?”
할머니는 웃으시며 산들의 손을 잡았어요. 하지만 샛강 두물머리까지 걸어가려니 산들에게는 너무 멀었어요. 족히 30분은 걸렸어요. 그래도 산들은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어요. 산들은 할머니가 샛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죠. 샛강의 나무, 샛강의 풀, 샛강의 새, 샛강의 수달, 그리고 샛강에서 만나는 사람들… 할머니가 샛강에 대해 말을 할 때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목소리는 노래하는 것만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산들이가 할머니 마음을 보살펴준 거예요.
(물놀이장 대신 샛강 고랭이못에서 놀다 ⓒ.김정순)
7월 31일, 서울시 미래한강본부가 예고한 시민 활동 가능한 마지막 날.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임만균 위원장이 샛강을 전격 방문했습니다. 그의 방문 소식이 알려지자 샛강지기들은 하루이틀 사이 40여명이 함께 하겠다고 말했죠. 목요일 오전에 그렇게 샛강지기들이 달려왔습니다. 정치인 한 사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샛강지기들의 소박한 바람을 들어달라고, 공동체를 지켜달라고 하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손주들을 돌봐야 하는 임설희 샘도 그런 분 중 하나였어요. 두 시간 동안 한 마디 할 기회조차 없는 분들이 태반이었지만 누구 하나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임만균 위원장의 말과 표정을 살폈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우리 여기 이렇게 있어요.” 그거 하나 보여주려고 오셨다고…
산들이와 산들할머니가 바라는 샛강은 별다른 게 아니랍니다. 산들이는 소박한 놀이팡에서 놀고 물가에 발을 담그고, 할머니는 인문학 공부를 하고… 뽕나무가 아프면 뽕나무를 돌봐주고… “샛강에서 계속 놀게 해주세요.” 간담회가 끝나고 산들은 용기내어 직접 임만균 위원장에게 말하기도 했어요. 이런 샛강은 누가 줄까요? 임만균 위원장이 줄 수 있나요? 박진영 미래한강본부장이? 그도 아니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너그러움을 기대해야 할까요? 저는 솔직히 그런 기대는 없어요. 그보다는 정치인에게 한마디 전할 기회가 있을까 싶어 새벽 내내 잠을 설치다가 손주들 이끌고 나온 산들할머니 같은 분에게 희망을 걸어요.
샛강에는 산들할머니 같은 샛강지기들이 310명이 있답니다. 이들은 매일같이 샛강에서 살아갈 거예요.
이제 8월이군요. 여름은 뜨겁지만 그래도 어느새 선선한 가을이 오겠지요. 그 때까지 우리 떠나지 말아요. 사랑하는 이들과 계속 살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