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의 최고 인기 스타 오리부부님. 지난 며칠 당신들 때문에 울고 웃었어요. 비단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2025. 7. 25.
은미씨의 한강편지 308_나는 수해를 입은 미호강
샛강의 최고 인기 스타 오리부부님. 지난 며칠 당신들 때문에 울고 웃었어요. 비단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은미씨의 한강편지 308_나는 수해를 입은 미호강
(아이들과 대화중인 오리부부 ⓒ.강고운)
샛강 고랭이못에 사는 오리부부에게,
샛강의 최고 인기 스타 오리부부님. 지난 며칠 당신들 때문에 울고 웃었어요. 비단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샛강의 꽤 많은 사람들이 그랬나봐요.
걱정하고 속을 태운 것은 지난 토요일 샛숲사 정지환 국장님이 올린 카톡 때문이었어요.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아침까지 한 마리가 안 보인다고 했거든요. 온갖 나쁜 상상이 꼬리를 물었죠. 누가 잡아먹으려고 가져갔을까? 사나운 짐승에게 물렸을까? 호기심에 샛강역 쪽으로 길가에 나갔다가 교통사고라도 났을까? 그도 아니면 부부싸움이라도 해서 한 마리가 떠났을까? 물론 부부싸움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당신들은 언제나 늘 다정했으니까요.
(7월 19일 혼자 다니는 오리 ⓒ.정지환)
샛강에서는 그동안 여러 마리 토끼들이 살았어요. 누군가가 유기한 집토끼들이었죠. 가정집에서 지내다 와서 그런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 먹었죠.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이 다가오면 토끼들이 무척 걱정이 되었어요. 샛강센터에 데려와서 집을 마련해줘야 할까 하는 궁리도 했어요. 어느 겨울 샛강에서 만난 인연으로 부부가 된 토끼들도 있었어요. 그들도 당신들처럼 다정했어요. 한 번은 일을 하던 유권무 팀장님이 저에게 말해주더라고요. 아, 그놈들이 주둥이를 요렇게 내밀고 뽀뽀를 하더라니까! 하고 말이죠.
토끼부부는 겨울을 잘 이겨냈어요. 굴을 파고 자기들 보금자리도 마련했죠. 또 한 번은 김현섭 공원팀장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죠. 숫놈이 집에 들어가질 못해요. 암컷 토끼에게 혼났나? 주변만 얼쩡거려요, 하고 말이죠.
그렇게 겨울을 잘 이겨낸 이 토끼부부도 어느 날 사라졌어요. 누구는 샛강문화다리 아래 살던 노숙자가 필시 잡아먹었을 거라고 하기도 했죠. 누구는 원래 키우던 토끼 주인이 뉘우치고 다시 데려갔을 거란 말도 했어요. 알 수 없는 일이죠.
오리부부가 무사해야 할 텐데… 나머지 한 마리가 꼭 나타나야 할 텐데… 이런 근심을 하며 저도 샛강 어귀로 걸어가봤어요. 비가 오고 나니 곳곳에서 맹꽁이들이 기세좋게 합창하고 있더군요. 생명은 이렇게 힘찬 것이구나. 기운 빠지지 말고 힘을 내보자 생각하며 걸었어요. 고랭이못에는 여느 때처럼 물 속에서 어싱(earthing)하는 맨발족 사람들이 쉬고 있었어요. 그들 사이에서 당신 부부도 느긋하게 쉬고 있었죠. “고마워요 무사해서.”그때 제가 하는 말 들었나요? 저를 쳐다보지 않길래 들었나 안 들었나 모르겠더군요.
샛강지기 박중흠 선생은 우연히 당신네 대화를 들었다고 하더군요. “못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우리 알을 보호하려면 시선을 좀 분산시킵시다.” “그러면 당신이 덤불 속으로 가요. 안 보이게 잘 숨어봐요.”
어제 아이들과 같이 당신네를 만난 강고운 위원장은 이런 말도 하더군요.
“오리들이 영어도 해요.”
그래서 제가 물었죠.
“영어로 뭐라고 했는데요?”
그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리 목소리를 흉내내더군요.
“Don’t do that! Don’t do that! 애들이 손을 내밀고 하니까 그러던 걸요?”
“영어 말고 우리말도 해요?”
“그야 물론이죠.”
(미호강에서 해피무브 수해복구 활동)
# 저는 수해를 입은 미호강입니다.
이번 여름도 시련이 비껴가지 않는군요. 며칠 쉬지 않고 쏟아진 폭우로 저는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상류에서 떠밀려온 쓰레기들이 사방에 널브러졌습니다. 기세좋게 자라던 나무들이 더러 부러지고 쓰러졌지요. 모래톱에서 장난질치던 미호종개들은 하류로 떠밀려 갔습니다. 수달들도 우왕좌왕 하며 돌아다니고 새들과 물고기들은 식구들 챙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언제나처럼 저는 힘을 내서 이 시련을 이겨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키우는 동물과 식물 식구들은 부지런히 저들의 삶을 살아가니까요. 하지만 속살까지 파고든 이 어마어마한 쓰레기들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네요. 악취가 풍기며 썩어가니 식구들은 살기 괴롭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던 차에 현대차그룹의 해피무브 대학생들 120명과 한강조합 활동가들이 찾아왔습니다. 찌는 듯한 무더위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쓰레기를 걷어냈습니다. 아, 얼마나 개운하고 행복하던지요.
(진천 미호강에서 수해복구 활동 ⓒ.염형철)
한강조합의 활동가들은 그동안 힘든 일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얼굴 표정이 어두웠어요. 보면서 마음이 짠할 지경이었죠. 하지만 그들은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일을 쉬지 않았어요. 그들의 수고를 보며 저는 다짐했어요. 어서 기운을 차리자, 내가 데리고 있는 자연의 식구들을 잘 돌보자, 그리고 내가 가진 아름다움과 생명력으로 그들을 위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