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차가운 빗방울들이 들이쳐 잠이 깨었습니다. 선득한 공기와 함께 가는 빗방울들이 잠을 자던 저의 얼굴 위로 떨어지더군요. 저는 창문을 활짝 열고 창 쪽으로 얼굴을 돌려 자는 걸 좋아합니다. 창가 아래 고양이 마루도 같이 마주보고 잠을 자죠.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4시. 습관처럼 페이스북을 여니 오산 지역 차지호 국회의원 (예전에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함께 일한 인연이 있어요.)이 안타까운 소식을 올렸습니다. 오산에서 폭우로 인해 고가도로 옹벽이 무너지고 차량을 덮쳤다고 하네요. 창졸간에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어쩌다 보니 지난 주 편지에서는 폭염으로 돌아가신 베트남 청년의 명복을 빌었는데, 오늘은 폭우로 돌아가신 분을 생각합니다. 모쪼록 다들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랄 뿐입니다.
# 지환의 샛강
(오늘 샛강 ⓒ.정지환)
‘샛강은 안녕합니다. 밤새 비가 내렸지만 오늘 아침 나가 본 샛강 숲길과 텃논은 침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팔당댐의 방류량, 서해의 조수간만의 영향을 받으면 언제든지 침수될 수 있는 운명이기에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궁금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소식 전합니다. 오늘 저녁 샛강지기의 날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샛강 걱정을 합니다. 샛강의 자연 식구들을 돌볼 책임이 더 이상 우리에게 있지도 않고, 샛강을 떠났는데도 그렇습니다. 샛강은 안녕합니다, 하고 시작하는 정지환 국장님의 카톡이 반갑고 고맙습니다. 그는 샛강숲길을걷는사람들 단톡방과 샛강지기 단톡방에 나란히 이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의 삶에서 샛강은 각별합니다. 한강조합이 샛강에 와서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그는 샛강의 변화를 봐왔습니다. 신길동에 살면서 이전에는 샛강문화다리 아래로 내려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샛강이 점점 더 깨끗해지고 숲이 우거지고 사람과 자연 식구들이 늘어나면서 그도 매일 샛강에서 살고 있습니다.
2020년 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지금 같은 여름 수해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샛강을 복구하기 위하여 달려왔습니다. 샛강에서 활동하던 정미나 박사님이나 염키호테 대표님도 물론 있었죠. 그들은 물이 빠지고 나서 온통 뻘흙으로 뒤덮인 샛강을 청소하고 어린 참느릅나무도 심었습니다. 무수한 난관이 닥쳐도 끝내 이겨내는 나무들처럼, 그 어리던 나무는 잘 자랐습니다. 샛강센터에서 공원으로 내려가는 나무 데크 아래 있으니 한번쯤 눈여겨 보셔요.
(지환과 그의 어머니 ⓒ.정지환)
근래 그의 어머니가 아팠습니다. 수술을 받으셨고, 잘 이겨내셔서 퇴원하셨지요. 효자 아들인 지환은 어머니를 신길동 집으로 잠시 모셔옵니다. 기력이 쇠약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는 샛강에 옵니다. 집을 나서서 골목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고 샛강문화다리에 접어든 다음 샛강 아래로 내려을 때까지, 어머니는 여러 번 쉬고 또 쉽니다. 지환은 그 옆에서 가만히 기다리죠. 어머니는 당신을 위해서, 또 어머니를 걱정하는 아들을 위하여 무척 힘을 내셨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오래오래 자식들 곁에서 잘 살아주실 거라는 약속이라도 하듯이, 어머니는 샛강에 천천히 다다르죠. 샛강의 하늘, 땅, 공기, 강, 나무들은 그런 지환과 어머니를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지환은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샛강센셋투어를 합니다. 그제는 어머니를 모시고 단 둘이서 했어요. 노을을 배경으로 나란히 선 어머니와 아들의 희미한 미소가 노을만큼이나 따스합니다. 그는 이렇게 샛강이라는 마을에서 샛강을 가꾸고 샛강을 즐기며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 강문화마을에서
(강문화마을 가꾸기 워크숍 참여자들)
어제오늘은 다섯 군데 강문화마을들이 양평에 모였습니다. 한강은 올해 다섯 곳의 강문화마을을 지정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거든요. 춘천 공지천사람들, 안양천의 안양군포의왕환경연합, 일산 한강하구 도란도반, 양평 갈산공원을사랑하는모임, 홍제천의 마을언덕 등이 다섯 마을입니다. 워크숍에는 여강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한강조합 여주지부도 함께 했어요. 여기에 힘을 실어주기 위하여 양경모 에코샵홀씨 대표님과 최종인 한국수달넷 공동대표님도 오셨습니다.
이틀동안 이들은 그들의 만들어온 강문화마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강조합이 해왔듯이 강의 쓰레기를 치우고, 생태교란종을 걷어내고, 강에 사는 생물들을 모니터링하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경험들을 공유했죠. 저는 그 자리에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다들 무척 좋으셨던 것 같아요. 도란도반 김경숙 대표님이 이렇게 카톡을 남겼네요.
“어제 워크숍 좋았어요. 발표 내용도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염대표님 강의도 좋았습니다.
다섯 개 단체 분들이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 특히 값졌어요. 당연히 배우고 싶은 점도 많았습니다. 맛있는 밥 먹여주시느라 애 많이 쓰신 한강 식구들과 갈사모 선생님들 감사했습니다. 좋은 자리에서 또 뵈어요. 다음엔 끝까지 함께할게요^^”
이처럼 지역의 강을 가꾸는 강문화마을 사람들이 있어 한강은 행복합니다. 어려운 일들도 여전히 많지만 이런 좋은 분들과 밝은 기운으로 힘을 냅니다. 다정한 마음으로 밝게 흘러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