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떠나신 지 어느새 2년, 아버지 만나러 제주에 왔수다. 아버지 돌아가시던 유월 저녁에 제대 병원 뒤쪽으로 붉게 물들던 저녁 노을이 지금도 선연합니다. 그 노을을 닮은 능소화가 곳곳에 피어있네요. 공항에서 저를 픽업하고 차를 운전하던 은덕언니가 “능소화가 이렇게 많이 피었네.” 하고 반색합니다. 은미야, 능소화는 너 닮았어, 그런 말도 했죠.
그런가… 내가 어디가 닮았지… 겸연쩍어 하면서도 저는 그 말이 싫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기억하시지요? 작년 아버지 첫 제사에는 아버지께 편지를 쓰고 읽어드렸지요. 살아 생전 다하지 못한 고마움과 미안함의 말들을 편지에 담았습니다. 아버지 기일이 다가오며 이번에도 편지를 쓰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제주도 오는 날까지 편지를 쓰지 못했어요. 이런저런 급한 일들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고, 마음이 어수선했으니까요. 당연히 올 3월부터 벌어진 샛강에서의 상황 때문입니다.
어려운 순간순간에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이럴 때 아버지는 뭐라고 하실까… 때로 갑갑한 마음에 샛강숲을 혼자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아버지를 부릅니다. 아버지, 나 잘 햄수과? 아버지, 어떵허코마씸? 그렇게 질문을 던지고 가만히 낮은 강물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샛강에서는 많은 일들이 매듭지어졌습니다. 이음숲이라는 업체가 위탁계약을 하고 들어와서 일을 시작했고, 샛강시민위원회가 잘 창립해서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열성적인 활동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제 슬슬 뒤로 물러서서 샛강의 시름은 잊고 조용히 도울 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샛강숲을 거닐다 보면 망가지는 모습, 조금씩 나빠지는 모습에 애타지 않을 수가 없고 외면할 수가 없더군요. 정을 붙이고 뭔가를 사랑하는 일이 이렇게 마음에 짐이 되는 일인가 싶습니다.
복잡한 마음을 뒤로 하고 제주도에 아버지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계신 추모공원에서 먼나무를 바라보던 순간에도 카톡이 요란하게 울리며 서울시 한강본부 소식이 전해옵니다. 우리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그런 말과 조치들… 우리와는 절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말들… 샛강 시민들에게 위압적으로 굴었다는 이음숲 관계자의 소식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 편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한강본부가 보도참고자료라는 것을 내어 우리를 매도하고 비난하는 문장들로 몇 페이지를 채운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어쩌다 검은 오름과 삼양 검은 모래 해변을 걸었습니다. 재미있게도 검은 드레스와 검은 자켓을 입은 예비 신혼부부들 여남은 쌍이 웨딩촬영을 하고 있군요. 검은 옷을 입어도 빛나는 청춘들이 아름다워 안 보는 척하면서 구경했습니다. 다들 저렇게 사랑과 희망에 부풀어 살아가는데, 나는 왜 샛강에 대한 근심으로 이렇게 무거울까 싶었습니다.
아버지 살던 시골에 작은 집을 짓고, 담장에는 능소화를 심어 덩굴을 올리고 감나무와 레몬나무를 심고 마당에는 감자도 좀 심어, 그냥 이곳에서 살까, 그런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이제 제 나이 55세. 무도한 행정과 저열한 언사를 서슴지 않는 공무원들에게서 멀어져 그냥 제주도에서 조용히 사는 꿈을 꾸어봅니다.
아버지, 그래도 수시로 아버지에게 묻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아버지 니째 똘 잘 햄수과?
아버지의 딸로 떳떳하고 용기있게 하루하루를 잘 살아보려 합니다. 샛강을 지키려는 샛강지기들 편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 그곳에 이미 깃든 작은 생명들과 수달과 같은 존재들을 지켜주는 일, 그것이 아버지의 자랑스런 딸로서 지금 제가 할 일이겠지요.
(샛강 수달 흔적을 살피는 최종인 한국수달넷 공동대표 ⓒ.박경화)
#수달 할아버지 최종인
최종인 할아버지께,
저는 샛강에 사는 막내 수달 달수입니다. 우리 엄마는 최종인 선생님을 할아버지 같은 분이라 하셔서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최종인 할아버지는 우리를 샛강에 살게 해주신 분이니까요.
20년 겨울에 할아버지는 한강조합 염키호테 님과 함께 샛강 구석구석을 돌아다니셨죠. 워낙 수달에 대해 달인이신 할아버지는 금새 수달 발자국과 똥을 발견했어요. 염키호테 님은 당시에는 샛강에 사는 너구리나 족제비 같은 녀석들과 우리들을 잘 구분하지 못했어요. 물론 지금은 그도 아주 척척박사가 되긴 했습니다.
할아버지, 우리들을 위해 집도 지어주고 집 주위를 수달촌이라 해서 지켜줘서 고마워요. 박경화 샘과 같은 수달언니들에게 우리 수달들 일상에 대해 잘 알려주신 것도 감사해요. 할아버지 못지 않은 박경화 언니도 열의가 대단해요. 우리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나 꼬박꼬박 보러 온다니까요. (우리가 꽤 귀엽고 사랑스럽긴 하죠?) 오는 토요일에도 다녀간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리 바빠도 매달 세번째 주 토요일에는 꼭 와서 우리집 앞에 있는 카메라를 점검하고 기록하곤 해요.
(우리 집을 지켜주세요. ⓒ.최종인)
최종인 할아버지, 요즘 우리 엄마는 걱정 근심이 말도 못해요. 한강조합이 떠난 이후 우리 동네가 위험에 처했어요. 우리 동네 울타리는 곳곳이 부서져서 사람들이 밤낮없이 함부로 드나들어요. 종종 아저씨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먹을 물고기를 잡고 즉석에서 배를 가르기도 해요.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광경이었어요. 게다가 요즘에는 우리집 바로 옆에 있는 나무다리를 뜯어서 다시 짓고 있어요. 우린 이제 어떻게 하죠? 보따리를 싸야 하나요?
어느 추운 겨울,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살피려고 은신처 뒤에 숨어 밤새 덜덜 떨었던 적이 있죠. 그 날 우리는 다른 곳에서 노느라 할아버지 앞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이제 생각해보면 좀 미안해요.
할아버지, 작년부터는 중랑천에 사는 수달들을 위해 그렇게 헌신하신다죠? 집도 지어주고 집 앞 쓰레기도 치워주고 사진도 멋지게 찍어주고… 요즘 처지가 어려워진 우리 가족은 중랑천 수달들이 부러울 지경이예요. 차라리 저희들을 중랑천으로 데려다 주실래요? 한강조합 활동가들과 다같이 중랑천으로 이사갈까요?
최종인 할아버지께 감사 편지를 쓰라고 엄마가 그랬어요. 더 정확히는 샛강에서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도록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래요. 할아버지, 이 편지 읽으시고 제발 좀 도와주세요. 샛강 우리집을 지켜주시거나 중랑천으로 이사하게 도와주시거나! 이제 곧 장마철이 되고 샛강은 홍수가 나서 범람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되면 한강조합 사람들도 없는데 수재 수달이 되는 우리들은 또 어떻게 버티어야 할지 막막해요.
그렇다고 할아버지 혼자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수달언니들도 있고 수달어린이들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의 편지를 대신 전해주는 은미 씨가 그러는데, 최종인 할아버지가 우리 돌보느라 고생하는 거 늘 고맙고 죄송하대요. 그래서 그런 마음이면 맛있는 식사라도 대접해야 도리가 아니겠냐고 제가 충고했어요. 사람들은 종종 자기들 살기 바쁘다고 정작 소중한 것을 잊는다니까요. 고마우면 고맙다, 사랑하면 사랑한다, 말하고 살아야죠. 어리석은 인간들이 우리 수달들에게 좀 배우는 바가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