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샛강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생명을 품어 키우고, 사시사철 기쁨을 안겨주던 샛강 고마워요. 은미씨의 한강편지 304_고마워요 샛강, 고마워요 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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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샛강.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생명을 품어 키우고, 사시사철 기쁨을 안겨주던 샛강 고마워요.
고마워요. 봄이면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던 버들가지, 새순이 솟아나던 나무들, 연두로 물들던 숲, 얼었던 땅이 녹아 말랑말랑 발 밑에 닿던 흙과 고운 숨을 내쉬는 땅,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사랑하고, 이내 새끼들을 낳아 부지런히 키우는 새들, 엄마 따라 종종종 헤엄치며 살아가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배워가는 아가 오리들, 애기똥풀 조팝 수수꽃다리 찔레꽃을 피워 향기가 가득하던 숲, 잉어들이 산란하기 위하여 올라오던 야트막한 강.
고마워요. 샛강의 여름은 생명의 합창. 뽕나무 오디가 검붉게 익어 새들을 먹이고 더러는 사람들의 손에서 입으로 가죠. 오디 색으로 물든 혀를 내보이며 웃는 사람들. 장맛비가 내리면 축축히 젖은 강과 숲이 꿈틀댑니다. 비가 그친 아침에는 지렁이들이 꿈틀대고 오리들은 부지런히 잡아먹어요. 해가 나면 뱀이 어슬렁 기어나와 작은 길을 가로질러 풀 숲으로 사라지죠. 둠벙에서는 맹꽁이 합창이 가까이 들려옵니다. 맹렬하게 맹꽁맹꽁 울다가도 보고싶어 다가가면 노래를 뚝 그치죠. 수천 수만 개의 구멍을 뚫고 올라온 매미들은 나무로 기어올라 삶의 절정을 노래하죠.
나무들은 재빨리 연두에서 진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었죠. 나무 아래는 어둑한 그늘이 드리우고, 오솔길을 걷다 보면 서쪽 하늘에 선홍빛 노을이 아스라이 번집니다. 능소화도 질세라 붉은 꽃을 피워내고, 이제는 볼 수 없는 그리운 사람들을 소환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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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샛강.
가을이 오면 계수나무를 만나러 샛강 어귀에 가는 이들이 많죠. 둥그런 잎사귀는 황금빛으로 변했다가 다시 연갈색이 되죠. 정순 샘은 계수나무 잎을 부지런히 주워 주위에 선물하죠. 둥글고 향기로운 낙엽을 건네는 그녀의 미소 어린 눈매도 둥글죠. 단풍으로 물든 뽕나무들은 숲을 환한 빛으로 채우죠. 찔레와 팽나무, 참느릅나무들은 작은 열매들을 익히며 새들을 먹일 채비를 하죠. 갈대와 억새는 가을 바람에 몸을 돌리고, 세월이 오고 가는 것을 무심히 지켜봅니다.
고마워요 샛강. 흰 눈이 내리면 설국이 되어 설렘을 안겨주던 신비로운 숲. 배고픈 직박구리가 머리에 묻은 눈을 털며 쪼아먹는 붉은 열매. 쉼과 충전이 필요한 생명들에게 따뜻한 땅의 가슴을 열어 품어주곤 하죠. 종종 그 아래 나도 누워서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연히 생긴 야트막한 흙 동굴, 옆으로 누운 거대한 나무 뿌리 아래 몸을 누이고 긴긴 낮잠을 자고 싶죠.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은 아득히 멀고, 샛강 겨울의 희미한 숨소리만 내 가슴에 전해오겠죠.
또 고마워요 샛강. 당신의 봄여름가을겨울도 고맙지만, 당신과 함께한 모든 날들이 고마워요.
우리는 7년 가까이 당신과 보냈어요. 차갑고 표정이 없어 보이던 당신이, 우리의 손길과 발길에 이내 미소지었죠. 가시박을 걷어내면 연한 가지를 뻗어 올리며 춤을 추었죠. 우리가 나무를 심으면 무럭무럭 잘 자라게 키워주었죠. 새집을 달거나 새들 먹이를 달아 놓으면 박새와 딱새들이 기뻐했어요. 바윗돌을 영차영차 옮겨 놓고 물길을 돌리자 수달이 왔죠. 수달 가족이 잘 살아가도록 지켜줘서 고마워요.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는 일이 헛되지 않음을, 세상을 조금은 좋게 하는 일임을 알게 해줘서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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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한강
나도 고마워요. 덕분에 나는 지루하고 긴긴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벗어났어요. 나는 원래 다산의 어머니죠. 내가 품고 키울 수 있는 생명은 하늘의 별처럼 많아요. 나에게는 넉넉한 대지와 사이로 흐르는 강, 달뿌리평원 같은 초지와 우거진 숲이 있지요. 내가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많은 부분 한강 덕분이죠.
꿈 속에서도 나를 괴롭히던 가시박과 환삼덩굴을 걷어내줘서 고마워요. 비로소 나의 나무들은 햇빛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죠. 어린 나무들을 옮겨서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마워요. 한강은 수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데리고 와서 내가 어쩌지 못하던 묵은 쓰레기를 걷어 내고, 물길을 살피고, 나무들을 돌보고, 새들과 물고기들을 도왔어요. 또 어린 아이들이 나에게 올 수 있게 해준 것도 고마워요. 자연놀이팡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요. 버려진 나무들로 벤치를 만들어 어르신들을 쉬게 해줘서 고마워요. 내가 키우던 매미 유충들이 잡혀가던 여름에, 그 여린 생명들을 구출해줘서 고마워요. 쓰러진 나무들을 일으켜 세우고, 버팀목을 세워주고, 무거운 머리를 다듬어줘서 고마워요. 탐방로를 수시로 관리해줘서 고마워요. 몇 년째 매일같이 나에게 오는 암환자 부부가 있어요. 남편이 전립선암 3기 진단을 받았는데, 내가 고쳐줄 거라는 믿음으로 아내와 함께 매일 와요. 그들이 맨발로 걸어다닐 수 있도록 보드라운 길을 내줘서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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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7년 동안 흘린 땀, 걱정과 근심, 나를 위하여 쓴 돈과 인력, 무엇보다 지극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나를 도와줘서 고마워요. 이제 나를 떠나는 한강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어요.
걱정 말아요 한강. 나는 괜찮을 거예요. 나에겐 수만 수억 생명이 깃들어 있죠. 내가 데리고 있는 식구들이 많아서 천하 권력자라고 해도 나를 이길 수 없어요. 무엇보다 나는 식구가 된 생명들을 위험하게 하는 이가 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공무원이나 개발업자나 혹은 그 누구라고 해도 나를 수탈하거나 이용하는 것은 할 수 없어요.
한강이 뿌린 땀방울이 나의 대지와 공기를 채워 다채롭게 기적처럼 피어나고 있어요. 나무들은 굳건하고, 꽃들은 세상을 다 덮을 기세이죠. 나비와 벌, 매미와 맹꽁이, 참게와 잉어, 족제비와 수달, 박새와 물총새. 이들은 더 많은 식구들을 나에게로 부를 거예요. 당신이 떠나도 나는 외롭지 않아요. 당신의 호소에 응답한 샛강지기들이 곁을 지켜주고 있죠.
잘 지내요 한강.
당신과 나는 한 물줄기로 연결되어 있잖아요. 언제 어디서 지내든 흐르고 흐르다 보면 우리는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죠.
그럼 안녕.
2025.06.26
한강이 샛강에게, 샛강이 한강에게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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