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정순이도 잘 있어요. 이토록 푸르르고 아름다운 초여름에 숲길을 거니노라면, 언니를 따라다니던 어린 정순이 떠올라요. 언니의 등에 업혀 발을 까딱까딱 하며 졸던 정순, 언니가 따서 먹여주던 산딸기 시고 달콤한 맛에 이마를 찡그리면서도 함박 웃던 정순, 언니가 토끼풀을 엮어 만들어준 팔찌를 끼고 밤에 잘 때도 풀지 않던 정순, 언니가 쪄서 먹어주던 하지 감자를 급히 먹다가 뜨거워 혀를 데던 정순, 언니가 시집갈 때 서운해서 눈이 퉁퉁 불도록 울던 정순…
언니, 저는 몇 년 전부터 매일같이 샛강 숲에 나와서 한나절을 놀곤 해요. 여기서 맨발로 흙길을 걷기도 하고,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밥을 먹기도 하고, 생태교란종 환삼덩굴이 올라오면 뽑기도 해요. 얼마 전에는 작은 텃논에 모내기도 했어요. 정순이 어렸을 때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내기가 끝나고는 막걸리와 부침개, 두부로 새참도 먹었어요. 봄에는 애기똥풀로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해요. 여름에는 숲 곳곳에 떨어진 오디를 줍고 더러는 나무에서 따서 맛을 봐요. 혀와 입가에 검붉은 오디 물이 들어요. 가을에는 샛강 어귀에 있는 계수나무를 보러 가요. 계수나무가 푸르던 잎을 노랗게 물들이고 이내 하나씩 떨어뜨리죠. 달고나 향이 나는 계수나무 잎을 하나하나 주워 와서 사쉐를 만들어요. 샛강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나눠줬어요. 겨울에는 작은 새들을 살펴요. 아이들이 옥수수가루와 견과류로 새들에게 먹일 버드케이크를 만들어 달아놓으면, 박새나 직박구리가 날아오죠.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엔 찔레 붉은 열매를 쪼며 작은 머리를 흔들죠.
어제는 풀잎으로 쪽배를 만들었어요. 어린 정순에게 언니가 가르쳐준 쪽배 만드는 법을 더듬어 떠올렸어요. 자꾸만 만들다 보니 이젠 그럭저럭 실력자가 되었어요. 정지환 선생이 저에게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줬어요. 샛강풀잎놀이연구소장이라나요.
언니, 정순은 샛강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노라면 언니가 자주 그리워요. 샛강에서는 언니를 따라다니던 어린 정순이 되니까요. 언니, 어제 샛강에 띄운 꽃잎 쪽배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요? 느릿느릿 서해까지 흘러가고 있을까요? 강과 바다를 건너 언니가 계신 하늘나라로 가닿을까요?
언니, 풀잎 작은 쪽배에 그리움 가득 담아 보냈어요.
먼 후일 만날 때까지, 언니 안녕!
2025.06.05
정순 드림
*이번 한강편지는 김정순 선생님이 사촌언니에게 쓰는 편지를 상상한 것입니다.
#성후의 놀이터 샛강
D-3 샛강시민위원회 창립대회
샛강지기들의 따뜻한 품이신 김정순 샘이 이끄는 풀꽃놀이 프로그램을 따라가 봅니다. 일주일 새 숲이 무성해졌습니다. 꽃이름도 배우고 생태교란종도 뽑아주며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습니다. 샛숲은 숨은 손길들이 지키고 가꾸는 공간입니다. 숲길을 걷다 보면 길 바닥에까지 쳐져서 내려온 뽕나무 가지를 폐목으로 정교하게 만든 받침대로 들어 올려 놓은 것이 눈이 뜨입니다. 그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니 숲길이 더욱 정답고 아늑합니다. 나뭇잎 배 만드는 법도 배워 작고 예쁜 배를 만들어 샛강에 띄우며 빌어 봅니다. 샛강시민위원회도 샛강처럼 흘러흘러 창대한 바다에 이르기를요. (2025.06.04 정성후 샘 페이스북 글)
오늘은 환경의 날입니다. 환경의 날이 있는 이번 주 7일 샛강을 가꾸고 즐기고 배우는 샛강시민위원회가 창립합니다. 5월 들어 모집을 시작했음에도 샛강시민위원회 샛강지기에는 230명이 참여할 만큼 높은 호응을 얻고 있고, 창립행사에도 백여 명이 오실 것 같아요. 창립을 축하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대표 재즈싱어 말로와 시민사회 원로들로 구성된 방탄노년단(BTN)이 재능기부로 축하공연을 해줄 예정입니다. 정성과 환대의 마음을 담은 밥상도 준비될 거예요. 오셔서 아름다운 샛강공동체의 시작을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