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새를 좋아하죠. 언제더라 15년 전이었는지 20년 전이었는지 가물가물해요. 그녀는 한국에 놀러올
2025. 9. 12.
은미씨의 한강편지 315_마리아의 삶
마리아는 새를 좋아하죠. 언제더라 15년 전이었는지 20년 전이었는지 가물가물해요. 그녀는 한국에 놀러올
은미씨의 한강편지 315_마리아의 삶
수라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황윤
마리아는 새를 좋아하죠.
언제더라 15년 전이었는지 20년 전이었는지 가물가물해요. 그녀는 한국에 놀러올 계획이었죠. 나중에 알았는데 아이돌 그룹의 팬이어서 자주 오곤 했어요. 2AM이던가 그래요. 저는 그런 쪽은 잘 몰라요. 2PM이 있는데 2AM도 있구나 하고 고개를 주억거렸죠. 마리아는 한국에 온 김에 새를 보고 싶어했어요. WWF 회원이던가 그래서 환경연합 회원이던 저에게 연결되었죠. 저는 환경연합에서 국제연대 자원봉사자여서 그런 연락들이 오면 부탁을 받곤 했거든요.
저는 새를 잘 모르니까 새를 꽤 잘 아는 이병우 샘을 소개해줬던 것 같아요. 그는 지금은 한국 유일의 탐조회사 에코버드투어 대표이지만 그 때는 ‘하호’라는 동아리에서 꽤 열심이던 탐조인이었죠. 뭐가 먼저이고 누구를 먼저 만났는지도 기억도 다 흐릿하지만요. 마리아는 나를 만나고 병우 샘도 만나고 또 하호 회원이던 슬아 샘도 만났죠. 세월이 흐르며 마리아는 슬아와 병우님과 친구가 되었죠. 마리아는 한국에 종종 놀러왔고, 슬아는 아들을 데리고 홍콩에 가서 마리아와 시간을 보내기도 했죠. 새와 환경단체를 매개로 한 인연으로 그렇게 마리아와 나, 슬아와 병우, 그리고 민규와 하준이라는 아이들이 인연을 맺었어요.
세월이 흘러 마리아를 만났어요.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까 우리에겐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있었죠. 특히 올 봄에 그녀는 남편을 잃는 큰 아픔을 겪기도 했죠. 내색하지 않아 나는 몰랐죠. 어느 해엔가 많이 아프다는 말은 들었지만요. 말하지 그랬냐고 하니, 그녀는 나에게 웃는 얼굴로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고 말했죠. 마리아의 남편도 새를 좋아했나봐요. 그녀는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새의 모습과 비슷한 도자기를 거실에 두었다고, 그 도자기 안에는 남편의 유골이 들어있다고 했죠. 새의 이름도 말했는데 영어라서 그랬는지 그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옆에서 병우 샘이 그건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군요. 하며 영어 이름과 한글 이름을 주고받았는데 말이죠.
세월이 흘러 저는 좀 늙고 지친 여인 같은 모습인데 마리아는 여전히 아름다웠어요. 살을 빼야 해요. 여기 하고 여기. 그렇게 자신의 몸을 가리키는 마리아의 모습은 귀여웠죠. 잘 웃고, ‘괜찮아요’라는 말을 자꾸만 하는 마리아는 다음에도 또 한국에 오겠다며 헤어졌죠. 그리고는 다음 날 슬아를 통해 저에게 기부금을 10만원 보내왔어요. 한강을 응원한다고, 힘내라고…
# 병우의 삶, 새들의 삶
병우도 새를 좋아하죠.
아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죠. 병우의 삶 속에 새들의 삶은 들어와 있으니까요.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큰 외국계기업에서 일하던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전문탐조회사를 시작하죠. 그것이 한 15년 전 즈음이었나 그래요. (병우샘 맞나요?) 에코버드투어라는 이 회사는 ‘국내 최초 전문 철새여행사’로 이제는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죠.
그도 환경연합에서 만났죠. 저는 국제연대 자원봉사 동아리에서 그는 야생동물 보호 동아리에서 활동했거든요. 그런 인연으로 그는 샛강에서의 새 모니터링를 자주 도왔죠.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2019년 샛강 활동을 기획할 때 벌써 외국인들을 위한 탐조 프로그램을 도입해보자고 논의하기도 했죠. 병우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도 자주 나가는 터라 점점 더 바빠졌어요. 한강조합이 샛강을 떠나고는 더더욱 조류 모니터링을 부탁할 일이 없어서 얼굴을 볼 기회가 적었죠. 그랬기에 지난 주에 마리아와 함께 만났을 때 무척 반가웠죠.
병우 샘 아들 하준이 만든 피켓 ⓒ.이병우
한참만에 만났던 그를 지난 일요일에 연달아 만났어요. ‘생명의 편에 선 사람들 - 생명지킴이대회’장에서 보았죠. 그는 토요일부터 내내 생명지킴이 행진을 따라다녔고, 아들 하준이도 아침부터 내내 행진에 참여했다고 하더군요. 초등학교 5학년 하준이는 수라갯벌에 사는 황새그림을 그려 집회 피켓을 만들기도 했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다시 집회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좀 생경했어요. 그래도 가길 잘한 것 같아요. 그곳에서 병우샘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온 반가운 환경운동가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가덕도공항을 막아내려는 이성근 부산그린트러스트 이사님부터 설악산 케이블카 때문에 수년째 애를 태우는 김안나 속초환경연합 국장님은 페이스북에서만 안부를 주고받다가 오랜만에 보았죠. 제주제2공항을 막아내기 위해 싸우는 핫핑크돌핀스 조약돌 대표도 있군요. 오래 전 강정평화대행진에서 봤는데 그도 여전하더군요. 현장에서 오랫동안 무척 고생해온 그들인데 그들은 오히려 저를 걱정해주고 안아주었죠. 샛강에서 고생해온 것을 다들 아니까요.
장대비가 쏟아져 우리들은 모두 흠뻑 젖었죠. 우산을 들어도 소용없었어요. 그래도 병우샘과 우리는 끝까지 집회장을 지켰죠. 특히 새만금 신공항 판결이 있는 9월 11일까지 새만금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분들을 생각하면 미안했죠. 새만금 수라갯벌을 위한 눈물어린 기도가 통했을까요? 어제 저의 SNS 타임라인에는 온통 환호와 기쁨이 넘쳤죠. 새만금신공항 취소 소송이 승소했거든요.
“꿈이냐? 생시냐?
새만금신공항 취소 소송 승소!”
(9.11 이병우 샘 페이스북)
이겼습니다!!! ⓒ.황윤
이겼습니다!!! 사랑과 정의가 이겼습니다!!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
국민 1308명이 원고가 되어 시작한 소송이라 더 의미가 큽니다.
정말 역사적인 판결입니다.
우리가 함께 기적을 만들었어요!!!
너무 기뻐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
수라를 지키는 여정에 함께 한 모든 분들,
고맙고 고맙고 사랑합니다.
😂😂😂💗💗💗
(9.11 황윤 감독 페이스북)
# When they go low, we go high
개발에 맞서 생명과 자연, 지역 공동체를 지키려는 싸움은 이기기가 쉽지 않죠. 환경운동사에서도 동강댐을 막아내서 동강을 지켜낸 것 말고는 변변한 승리의 역사가 없었죠. 이번에 새만금신공항을 막아내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겠네요. 새만금 수라갯벌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끝내 지켜냈군요,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새만금에 비하면 샛강을 지키기 위해 했던 일을 그리 큰 고생이 아닐지도 몰라요. 한강은 샛강을 떠난 것이 지난 6월인데도, 서울시는 여전히 우리에게 샛강센터 건물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하고 있죠. 그제는 저의 ‘피아노가 샛강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오마이뉴스 기사에 관해 서울시가 해명자료를 냈는데 차마 옮기기도 어려운 저열할 말들이었죠.
이정원 처장을 안아주는 윤주옥 샘
어제 표정옥 교수님의 한강살롱이 있었어요. 살롱을 들으러 온 윤주옥 박사님이 저를 보더니 여러 번 포옹을 하네요. 얼마나 힘들었냐고, 샛강에서 고생이 많았다고, 그런 마음으로 안아주었죠. 뒷풀이를 하며 저는 이런 말을 했어요. 저는 문학을 사랑하고 인문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한강살롱에서 보시듯이 우리는 삶의 품격을 생각하죠. 그런데 서울시 해명자료를 보면 거짓과 공격으로 가득한 말들이죠. 이런 간극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가 요즘 드는 고민이네요.
그러자 주옥 샘이 말하죠. “은미샘, 미셸 오바마가 말했어요.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우리는 우리의 길을 품위있게 가면 됩니다.” 저는 이 말이 미셸 오바마가 한 말인 줄은 몰랐지만, 안 그래도 마음에 두고 있었죠. 샛강에서도 수라갯벌의 기적이 만들어질 날이 올까, 샛강지기들이 매일같이 간절하게 지키고 있으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