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인 오늘은 단연 달님이 주인공입니다. 아침 일기예보에서는 오늘밤 과연 달을 잘 볼 수 있을지 알아보기도 하고, 제가 즐겨 듣는 클래식 FM에서는 달을 주제로 한 음악들이 선곡표에 있네요.
저녁 ‘세상의 모든 음악’ 방송에서는 김용택의 시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를 일부 들려줍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시에 강이나 물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더 친근하게 여겨집니다. 그만큼 제가 한강과 푹 사랑에 빠져있다는 반증이겠지요?
아침에는 눈발이 내렸지요. 샛강으로 출근을 했는데 환경지킴이 님들이 계속 눈을 쓸고 있었어요. 저는 출근이 좀 늦은 편이라 그들이 언제부터 눈을 쓸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눈송이가 자꾸 머리와 얼굴에 떨어져 시야를 가리기도 했죠.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계속 빗질을 하고…
어제부터 출근한 박찬희 과장이 팀장에게 다가가서 뭔가 소곤소곤 해요. 그리곤 그분들께 중간중간 쉬고 또 필요하면 쓸자고 제안하는군요. 고맙더군요. 출근 이틀째인 분이 함께 일하는 분들을 눈여겨보고 어려움이 없는지 살피고 먼저 다가서는 마음이 좋았어요.
아침엔 흐렸지만 밤에 보는 달님은 환했어요. 더없이 밝고 멀리멀리 비춰주시네요. 돌하 노피곰 도도샤 멀리 비취오시라… 멀리 비추는 달님의 은덕으로 선생님들의 근심도 사라지길 바라요.
달님을 보러 나와서 몇 가지 소원을 빌었어요. 이번 달에 결정되는 한강남쪽 생태공원 위탁을 꼭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죠. 몇몇 분들의 건강회복도 기원했어요. 지난 주말 돌아가신 은철 아버지의 명복도 빌었어요. 유학을 준비하는 아들과 곧 군 입대를 앞둔 선영팀장 아들 서진이도 떠올렸어요.
(2019년 샛강에서 시작하다.)
#꿈에서도 간절히 샛강하다
낮에는 고향친구 은철이가 전화를 하더군요. 제주도에서 올라와서 오늘부터 병원에 나왔다고. 후원을 하겠으니 한강 후원계좌를 불러달라고 해요. 지난 주말 은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는 장례를 치렀어요. 저에게는 각별한 친구라서 저도 제주도에 내려갔어야 했어요. 그런데 우물쭈물 가지 못했어요.
비행기 타면 제주도가 먼 곳도 아닌데 다녀올 걸 그랬나 마음이 안 좋았어요. 내심 구실을 찾는 마음은 제주에 내렸던 폭설을 탓했죠. 지난 주에 폭설로 전면 결항이 된 날도 있었잖아요. 혹시 내려갔는데 또 그렇게 되면 지금 시급한 일은 어쩌나 하는 생각… 제일 큰 이유는 위탁제안서를 작성하는 중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혼자 붙들고 쓰는 것도 아닌데 자리를 비우는 게 불안하게 느껴졌어요.
내내 실내에서 문서를 쓰다가 찬 공기를 쐬러 샛강숲에 내려갔어요. 춥기도 했고 일도 바빴던 터라 오랜만에 걸었죠. 이제는 식구처럼 익숙한 나무들을 보며 천천히 걸었어요. 생태연못에 나와 있는 청둥오리가 여섯 마리나 되어 반가웠어요. 이전보다 새들이 덜 보여서 그것도 근심하고 있었거든요. 한적한 물가에까지 걸어갔어요. 주위엔 사람이 없었죠. 갑자기 내 앞에 수달이 나타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는데 괜히 설레더군요.
(고덕수변생태공원의 봄 ⓒ.김선민)
(암사생태공원의 겨울 ⓒ.이석재)
샛강을 포함한 한강남쪽 생태공원 위탁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 한강 활동가들의 일자리, 고덕수변생태공원과 암사생태공원에서 일하는 분들의 일자리, 그리고 함께 일하는 대한노인회, 발달장애인들, 50플러스센터 선생님들의 일자리가 걸려 있기에 막중합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샛강의 풀과 나무들, 새들과 동물들, 그리고 벌과 나비들도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해요. 습설에 부러진 버드나무들 때문에 같이 아파하고 청둥오리 새끼들의 탄생에 한호하고 수달이 똥을 싸둔 자리에서 킁킁대며 잘 먹고 사나 궁금해하고 꽃을 많이 피워서 벌과 나비들을 초대하는 일. 어린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어놀게 하고, 어르신들이 어린 시절 추억을 되새기며 숲에서 쉬고, 청년들이 힘차게 자원봉사를 하고, 장애인들이 자연 속에서 힘을 받고 교감하고, 외국인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기여하게 하는 일. 그런 일들을 계속 해야 하니까요.
요즘은 종종 샛강 꿈도 꿉니다. 그만큼 간절한가 봅니다. 오늘 달님에게 부탁했으니 들어주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