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 어쩌다 보니 저는 늘 사고를 치는 역할이고, 어디선가 귀인들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주곤 합니다.
1년 전쯤이었어요. 중랑천에 야생동물들을 위한 생추어리를 만들자고 했으니 미친 소리나 다름없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덧 그림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중랑천에 나타난 귀인들은 우중가(우리는 중랑천을 가꿔요) 팀과 정원팀이 아닌가 싶습니다.”
(2024.08.07 염형철 페이스북 글 부분)
(휴식 중인 박반장님과 우중가 C.염형철)
#박반장이 말하다
그 양반 사고치는 거 몇 년 동안 보기도 하고 듣기도 했지. 일단 해봅시다. 우리가 합시다. 되는 데까지 해봅시다. 그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사는 양반이야.
난 원래 샛강생태공원에서 거기 팀장님들하고 일했어요. 유팀장님 김팀장님 깨농이랑 나, 때때로 창직 선생도 일하고. 여럿이서 교란종도 관리하고 망가진 산책로도 보수했지. 겨울엔 새집도 만들어 부모들이 애들 데리고 오면 달게 했어. 나중에 모니터링 하는 사람이 그러던데 딱새랑 박새들이 아주 잘 썼다고 하대. 누구는 영상도 찍었어. 박새 가족 영상 말이야.
샛강에서 재밌었어. 땀 흘려 일하고는 퇴근하면 우리끼리 꼭 한 잔 하지. 막걸리랑 감자전을 두고 하루 동안 공원에서 있던 일들을 떠들다 보면 몇 병이 금새 바닥이 나. 여의도 상가에 있는 왕서방네 직화구이 그 집이 아주 좋아. 비싸지도 않고.
근데 어느 날 염대표가 와서 그러는 거야. 반장님, 좀 도와주세요. 중랑천에 생추어리 한 번 멋지게 만들어 봅시다.
생추 어리? 처음엔 못 알아들었어. 상추인지 생큐인지. 뭐 그런 어려운 단어를 써서 말하는지 지금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나중에 조대표가 그러대. 그거 비빌 언덕 같은 거예요. 야생동물들에게도 비빌 언덕이 있음 좋잖아요? 하면서 말이야. 조대표는 맨날 소설책을 읽는다는데 그 말도 영 엉뚱해. 나도 이 나이에 비빌 언덕이 없는데 뭔 동물들까지 비빌 언덕이 필요해?
나중에 염대표가 현장에 나를 데려가더니 열심히 설명하더라고. 홍수가 나거나 할 때 야생동물들이 쉴 수 있는 피난처 같은 데라나 뭐라나. 나는 집도 일산이라 멀어. 그런데 이 양반 참 집요한 데가 있어요. 삼고초려 저리 가라야. 알겠다고 할 때까지 주말이고 밤이고 없이 카톡과 전화를 해대는 거야. 내가 두 손 두 발 들었지. 그렇게 3월부터 와서 일하고 있어. 힘드냐고? 아니 이봐요. 내 모습을 보고 그런 질문이 나와? 힘들지, 그럼 안 힘들겠어요?
샛강에는 센터도 있고 공원에 나가면 나무 그늘이 있어 좋아. 여기는쉴 데도 마땅치 않아. 여름이 되니 하루에도 수십 번 땀으로 샤워를 해. 남들 여름 휴가다 뭐다 해도 우린 더 바빠. 장마 지나니 쓰레기도 잔뜩이고, 수달집이며 다들 망가지고, 또 여름에 교란종은 뒤돌아서면 그새 자란다니까?
보다 못해 조대표가 말했대. 제조업 공장들도 7말8초에는 쉬고 휴가를 가는데, 폭염 때는 한 일주일 쉬면 안 되겠냐고. 우리도 며칠 쉬어 볼까 생각도 했는데, 염대표가 35도 넘는 날도 일찍부터 중랑천에 오는 거야. 그러면 우중가 로맨 님이랑 나는 또 온종일 죽어라 일을 하지. 허허허. 그래도 어제가 입추라서 이제 살만하겠지 뭐.
샛강 공원팀장들도 보니 마찬가지야. 거긴 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이용해? 장마 지나고 큰 나무들이 찢어진 게 수십 그루가 넘는대. 산책로와 데크며 교란종까지 할 일이 산더미여서 쉬지 못하겠대. 난 한강조합 사람들이 좀 미련한 것 같아.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해? 이게 다 염대표가 사고치고 일 벌이는 스타일이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말이야.
(봄날 중랑천 정원에서 염키호테)
#염키호테는 자랑하다
황무지의 쓰레기를 치우고, 딱딱한 바닥을 파서 연못을 만들고, 끝없이 오르는 생태교란종을 제압하고, 콘크리트 바닥에 나무를 심고, 수없이 물조리를 날라 나무를 살리는 일을 진짜로 해낸 것입니다. 엄청난 장비나 돈이 아니라 꾸준히 즐기듯이 일하며 마음을 모으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야생동물들을 위한 숲이 제법 우거지고, 맹꽁이들이 연못에서 신나게 노래를 하고, 동부간선도로변에 어린 사철나무들이 어깨를 걸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눈을 즐겁게해주는 작은 정원이 조성됐고, 올 겨울엔 원앙을 비롯한 철새들이 좀더 씩씩하게 날아다닐 겁니다.
(2024.08.07 염형철 페이스북 글 부분)
(여름날 수달집 복구하는 염키호테)
#우중가 로맨 님이 말하다
저는 성동구 희망나눔 소속으로 올해 2월부터 중랑천에서 한강조합과 일했어요. 일자리 사업 참여하는 시니어들을 강가 콘테이너에서 일하라니 처음엔 야박하고 경우가 없는 단체인가 싶기도 했어요. 몇 달 같이 일해 보니 제가 오해했더라고요.
한강조합은 돈이 많아서 일을 벌이고 해내는 곳이 아니더라고요. 사람들이 검소하고 성실해서 일을 엄청 하더라고요. 저는 평생 성동구에서 살았거든요. 그런데 다른 곳에서 온 한강조합이 우리 동네 중랑천을 위해서 쓰레기도 치우고 나무도 심고 정원도 가꾸고 하니 고맙죠. 중랑천을 좋게 가꾸면 수달이나 원앙도 잘 살고, 아름다운 자연을 곁에 둔 시민들도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서 일한대요.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늘 돈과 인력이 아쉬운가 봐요. 그래서 저도 이번에 한강조합 후원 가입도 하고, 홍반장님과 박영옥 선생 같은 우중가 분들과 일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염대표가 중랑천 오는 날은 일이 더 고되긴 해요. 대표가 한시도 쉬지 않으니 덩달아 하다가 밥 때를 놓치기도 해요. 뭐 괜찮습니다. 우리 동네 일이니까요. (웃음)
(2019년 봄 샛강에서 일하는 한강 사람들)
하고 싶은 일이 여전히 너무 많은 한강조합이 곧 후원행사도 한대요. 관심 가져 주시고 여력이 되시면 조금씩 도와주세요. 요즘 이렇게 진심으로 뭘 하는 데가 흔치 않은 것 같아요.
여기 중랑천에 사는 식구들이 제법 늘었어요. 저번에는 사방에 온통 실잠자리가 가득하기도 했어요. 맹꽁이들이 너무 울어대서 시끄러워 죽겠어요. 그래도 좋아요. 어릴 적 시골 갔을 때 생각도 나요.
무더위가 한풀 꺾이면 중랑천에 놀러오세요.
2024.08.08
한강 드림
(이번 편지는 한강조합 중랑천에서 일하는 박기철 반장님과 우중가 로맨 님의 마음을 상상해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