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얼굴의 눈은 차디찬 미소를 머금고 다가온다 이내 눈은 온몸으로 포옹한다 창백한 해가 다 이울도록 눈은 떠나지 않는다 나무의 우듬지와 잔가지와 여전히 푸르던 잎에 눈은 오래 머무른다 차디찬 눈의 웃음이 시리다 바라보던 나무는 피로하다 나무는 고개를 떨구고 등을 구부린다 나무는 눕는다 쓰러진다 탄식한다 눈은 떠난다 회한도 눈물도 없이
작년 11월 말경에 내린 첫눈은 샛강숲의 수많은 나무들을 쓰러뜨렸습니다. 누구는 피해를 입은 나무가 몇 백 그루라고 하고 누구는 천 그루쯤일 거라고 하더군요. 샛강 공원팀장님들은 천 그루도 훨씬 더 된다고 하네요. 1997년도에 샛강숲이 생긴 이래 나무들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시련입니다. 그동안 가시박의 공격과 태풍 링링의 횡포도 견뎌내어 제가 의지나무라고 (Will-ow) 이름지은 그 나무도 굵은 줄기가 처참히 꺾이었습니다. 쓰러진 나무들을 베어내고 잘라내고 솎아내고 치우는 일이 끝도 없습니다.
(샛강숲에서 유권무 팀장님 ⓒ.김현섭)
어제는 권무 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가 그를 쓰러뜨렸기 때문입니다. 권무팀장님과 현섭팀장님은 첫눈 이후 부러지고 쓰러진 나무들을 정리하느라 고생하고 있습니다. 숲 안쪽에 있는 나무들은 작업 차량 접근이 어려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자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 나무가, 엔진톱에 신음하던 나무의 몸통이 한순간에 팀장님 쪽으로 날아왔습니다. 충격으로 사다리와 함께 쓰러진 그는 너무 놀라서 얼이 나갈 정도였습니다.
나무의 타격은 오래갔습니다. 심신이 쇠약해진 틈을 타서 감기까지 괴롭혔습니다. 샛강숲의 산신령처럼 숲에 머물며 나무들을 돌보던 그는 이 일로 기백과 자신감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수많은 나무들을 살리고, 키워내고, 가시박과 환삼덩굴을 걷어주며 햇살 아래로 초대하는 것이 그의 일입니다. 그는 쉴 새 없이 일하고 파김치가 되기 일쑤입니다. 제가 재작년 겨울에 한강편지에 그가 일하는 모습을 이렇게 썼네요.
‘영하의 날씨였던 어느 날은 그를 종일 못 봐서 나가보았습니다. 작업복 위로 눈에 잘 띄는 주황빛 조끼를 걸친 그의 얼굴은 추위로 벌겋게 얼어 있었습니다.’
쓰러진 나무들을 베어내고 치우고 나니, 샛강숲을 걸을 때 벌써 휑한 느낌입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사람 일만 그런 것이 아닌가 봅니다. 힘겹게 살아남은 나무들은 이 시련을 잘 이겨내면 좋겠습니다. 돌보던 나무에게 타격을 입은 권무팀장님도 온전히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눈도 내리고 바람도 불고, 지친 나무들에게는 시련의 겨울입니다. 나무 곁을 지날 때, 나무들에게 봄이 멀지 않았다고 속삭여줘야겠습니다.
(2025년 샛강에 돌아오다 ⓒ.최병언)
#1997 병언
작년에 영화 ‘땅에 쓰는 시’가 개봉되어 정영선 조경가가 많이 조명되었습니다. 여의도샛강 생태공원의 탄생에 그가 기여한 것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요. 실제로 그 영화를 보고 샛강생태공원이 궁금해서 찾아와본 시민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샛강생태공원이 정영선 조경가만의 결실은 아닙니다. 서울시립대 이경재 교수님, 최병언 공무원, 그리고 정영선 조경가가 합심하며 탄생시킨 우리나라 1호 생태공원입니다.
공원이 조성되고 나서는 그는 공무원으로서 유지관리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는데요. 이 시기 동안 생태모니터링을 하고 그 결과로 ‘자연생태계 모니터링을 통한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의 관리방안’이라는 주제의 석사 논문도 쓰게 됩니다. 샛강생태공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최병언 박사님이 새해 들어 다시 샛강으로 돌아왔습니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하고 이런저런 공부와 사업을 하다가 한강조합에 전격 결합하신 것입니다. 삼십 대의 청년이던 최병언이 육십 대의 노련한 최병언 박사가 되어 샛강숲을 다시 걷습니다. 1997년 어린 버드나무로부터 시작한 샛강숲이 이렇게 울창한 도심 속 원시 자연이 된 것에 대하여 자긍심이 크겠죠. 한편 눈 때문에 쓰러진 나무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할 것 같아요.
세월이 흐르고 흘러, 다시 샛강에서 일을 시작하는 그의 마음을 상상해봅니다. 어떤 운명의 씨줄과 날줄이 그를 다시 샛강으로 이끌었을 겁니다. 청년 최병언의 꿈이, 노년 최병언의 비전이 한강과 샛강에서 잘 펼쳐지기를 응원해봅니다.
(초창기 샛강생태공원 모습 ⓒ.최병언)
(샛강에서 안내하는 최병언 공무원 ⓒ.최병언)
새해를 시작하며 이렇게 최병언 박사님이 합류하고, 또 여주지부에서는 남윤미 과장님이 일을 시작합니다. 몇 년 쉬었던 여주지부가 다시 활기를 찾습니다. 앞으로 종종 들려올 여강 소식에도 귀를 기울여주세요.
연말연시를 지나며 여전히 어수선한 정국이지요. 마음이 산만하고 불편해서 그런지 이번 주말로 다가온 한강유람단 참여가 저조하네요. 이럴 때일수록 자연을 더 가까이하셔야 힘이 납니다.
음식은 꼭 이렇게 해야만 제 맛이 난다는 식의 “틀렸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외부의 권위자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 보다 맛에 대한 기억이 뇌에 가장 오래 저장된다고 하니까 그동안 내가 먹어왔던 오래된 맛의 기억(엄마의 손맛)을 더듬어 그와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여러 식재료들을 가지고 실재로 오랜 시간 내 손으로 해 보면서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내 맛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아주 간단하지만 깊은 맛을 내기가 쉽지 않은 푸근한 미역국 어떠세요 여기에 요즘 제철 굴이나 홍합 바지락을 넣어도 좋고, 소 양지머리나 국거리를 넣어도 좋지만